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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년] 엘리스 자카리아스 해군 대령의 라디오방송이 일본과 미국에 끼친 영향
ⓒhuffpost japan

전후 70년을 맞이하기 전, 올해 8월 초 쇼와 일왕(히로히토)의 '옥음 방송(玉音放送, 일왕의 항복 방송)'의 원본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종전을 둘러싸고 일본 본토 결전을 추진하고자 하는 군부와 평화를 추진하는 파의 대립, 라디오에서 옥음방송을 저지하기 위해 젊은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등은 영화화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한 미국인이 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아사히 티비 '더 스쿠프 스페셜'에서 취재 한 '또 하나의 평화 협상(The Other Peace Negotiation)'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또 하나의 평화 협상'의 무대는 역시, 라디오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라디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송된 내용 대부분은 일본과 미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처절한 정보 전쟁이었다. 그런 라디오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45년 5월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고 일본이 연합군에 맞서 싸울 유일한 나라가 된 시기였다. 스즈키 칸타로가 내각 총리에 취임하고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미국이 라디오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장소는 워싱턴 DC에 있는 내무부 안의 시설이었다. 나도 이곳을 방문한 적 있는데 지금도 예전 그대로의 형태로 남아있다. 독일이 항복한 날 이후 이 스튜디오에서는 일본에 평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국립공문서관에는 당시의 음원과 일본의 대응을 기록한 '피스 토크(Peace Talk)'라는 제목의 파일이 남아 있다.

당시 미국에서 방송을 했던 사람은 엘리스 자카리아스(Ellis Zacharias) 해군 대령이었다. "무조건적인 항복은 결코 일본 국민의 전멸 또는 노예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저항을 포기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당신들은 스스로 나라를 구제할 수 있다." 유창한 일본어로 미국의 공식 대변인을 자처한 자카리아스 대령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그의 아들을 방문했다. 자카리아스 해군 대령의 아들 제라드씨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히로히토 일왕의 즉위식 기념 앨범이었다. 전쟁 중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서 일본에 주재했던 자카리아스는 일본어를 독파했으며 일본에서 미군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졌었다.

"아버지는 일본을 사랑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제라드씨는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것은 히로히토 일왕의 동생인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다카마쓰 왕자)이 신혼 여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호위역을 맡았던 자카리아스, 왕자와 공주의 사진이었다. 일본에서 체류하던 중, 몇 번이나 황실 행사에 초대된 자카리아스는 특히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과 친분을했다. 쑥대밭이 되어가는 일본에 마음이 아팠던 자카리아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더 이상 힘든 전쟁을 계속할 이유는 없다. 이대로라면 수백만, 수천만의 인명 피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목숨들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이다. 일본에서 황실과 굉장히 가까운 존재였던 자카리아스는 방송의 대상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저서 '비밀 미션(Secret Missions)'에서 자카리아스는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일본의 항복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일왕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호소했다."

첫 번째 라디오방송에서 자카리아스는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총리님, 스즈키 간타로 해군대장님은 저와의 대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감히 말하지만, 다카마쓰 왕자와 공주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를 기억해보시길 간청합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은 절 믿어주실 거로 생각합니다."

훗날 인터뷰에서 자카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카마쓰 왕자가 일왕에게 의견을 전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생전 다카마쓰 왕자와 친분이 깊었던 외교 평론가 가세 히데아키는 히로히토 일왕과 다카마쓰 왕자 사이에서 들은 에피소드를 말한 바 있다. "다카마쓰 왕자가 해군 사령부의 참모로 있었는데 황제에게 편지를 썼다. 해군은 포병 병력을 상실한 다급한 상황이며, 자신의 형 일왕에게 사적으로 편지를 써 평화를 고려해보라고 간청했다."

라디오방송을 통한 자카리아스의 호소에 일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실 다카마쓰 왕자 외에도 평화주의자인 당시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의 비서관 카세 토시카즈, 그의 동료에 의해 일왕에게 평화의 메시지는 전해졌었다. 2001년 인터뷰에서 카세 토시카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시 자카리아스가 라디오 방송을 몇 개 했지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일왕에게 메시지를 전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미국의 프로파간다였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그는 그 방송이 미국의 프로파간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자카리아스는 잘 알고 있었다."

연합군에 항복하고 전쟁을 종결함에 있어서 일본이 끝까지 고집 한 것이 국체수호였다. 이에 대해 자카리아스는 21회 방송에서 이렇게 호소한다.

"일본 지도자들이 당면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태평양 서약에 있는 그대로 무조건적으로 항복하고 그에 동의하는 것이다."

1941년에 맺어진 태평양 헌장 제3조에는 "전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정부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나와 있다. 즉, 무조건 항복 후에도 국체 수호, 즉 천황제의 존속이 가능하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라디오 방송이 나오던 밤, 일본 정부도 움직였다.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이 쏜 긴급 극비 전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자카리아스 대령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태평양 헌장에 기초한 평화 회복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연합군 측이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자카리아스는 경악했다. 포츠담선언에서 정부에 대해 자신이 호소한, 일본 정부도 요청한 "국체 수호"라는 단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제라드씨는 지금도 분노에 떨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포츠담선언에 천황제의 존속이라는 설명이 왜 없었는지 의심스럽다고 화가 났었다. 아버지는 천황제의 존속이야말로 협상의 초점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피스 토크'는 중단됐다. 그리고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자카리아스의 열망은 포츠담선언에 반영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 자카리아스의 곁으로, 종전 1년 후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해군 정보부 시절의 동료이자 도쿄에 주재하고 있던 엘리스 맥에보이(Ellis McEvoy)가 쓴 것이었다.

"다카마쓰 왕자와 만찬을 함께했을 때, 전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카리아스의 방송은 평화지지자들이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군부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탄약을 제공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서로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라드씨는 아버지가 정말 기쁜 듯이 그 편지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회상한다.

"평화 지지자에 제공된 탄약" 그 탄약에 담겨 있던 것은 서로의 나라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는 데서 배양된 일련의 신뢰와 상호작용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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