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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게티이미지

 

“아기집은 잘 커지는데 아기만 안 보여요. 다음 주에도 안 보이면 유산인데 집에 오니 눈물만 나네요.”

“병원에 갔더니 계류유산이라고 합니다 . 요즘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는데, 제가 덜 조심해서였을까요?”

“임신 6주인데 난황만 있고 아기가 없대요. 고사난자 때문이라고 하던데 제 나이가 많아서일까요.”


지난 3개월 사이 유명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이다. 온라인 공간에는 계류유산(자연유산의 50%를 차지하는 유산의 한 종류)을 겪은 여성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비단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다.

최근 <한겨레>에 제보해온 35살 기혼여성 ㄱ씨는 지난해 계류유산 뒤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병원으로부터 유산이 ‘고사난자’ 때문이란 설명을 들었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고사난자가 발생하는 원인은 남성 쪽 염색체 이상을 포함해 수정 과정에서의 문제 등 발생 원인이 여성에게만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고사난자’란 명칭으로 인해 ㄱ씨는 시부모에게 유산 사실을 알릴 때 ‘며느리 책임론’이 불거질까 봐 곤혹스러웠다. 시부모에게는 남편을 통해 “계류유산 되었다”고만 전했다.

“유산의 이유가 불명확함에도 유산의 원인이 고사난자 때문이라고 하면 마치 난자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들려 유산이 제 탓이 됩니다. 유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의료 사회적 관행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ㄱ씨는 <한겨레> 젠더팀에 상세한 취재한 취재를 요청했다.

임신과 출산을 비롯해 유산까지,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에게 과한 책임을 지우고 남성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현실이 고사난자란 용어 뒤에 숨어 있진 않을까.


유산은 여성탓? 염색체 이상 등 여러 가능성

10일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공식 의학용어인 고사난자(영문명 blighted ovum, 망가진 난자라는 뜻)는 수정이 된 난자가 자궁에 착상된 뒤 태반과 배아(태아)로 발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히 이상이 생겨 태반만 자라고 배아가 자라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계류유산을 일으키게 된다. 무배아 임신도 같은 뜻이다.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담당 학술이사(경희대 의대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고사난자’란 용어에 대해 “젠더 관점의 문제 제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뭔가 용어를 붙여야 하는데 현재는 난자 이상으로 명칭이 붙었지만, 난자 이상의 원인은 당사자인 여성의 생식능력 문제가 아니고 다음 임신에도 지장이 없다. 그저 한 난자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류유산을 겪은 환자에게 발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사난자라는 의학용어로 인해 유산의 책임이 여성에 있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과학기술학자 임소연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발생 원인을 난자 문제로 특정할 수 없음에도 재생산 분야에서 남성의 몸은 제대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그저 쉽게 고사난자라고 명명된다”고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계류유산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의 진료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 살림의원 원장은 “의사가 유산의 원인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준다면 듣는 이가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최 전문의는 “저는 ‘유산되었다’고 설명해 드리고 진단서에도 ‘계류유산’으로 쓴다. 초기 유산 원인은 수정부터 발달 과정에서 배아 자체의 문제인 경우(대표적으로 염색체 이상)가 많다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임에서 난임으로 바뀌었다. 고사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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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게티이미지


재생산 의료 영역에서 불필요한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용어 사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운동은 2000년대부터 있었다.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뜻의 불임 대신 임신 가능성을 열어놓은 난임으로 정부의 공식 용어가 변경된 것도 당사자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자 벌어진 사회 운동에서 비롯됐다.

2005년 한국난임가족연합회는 언어순화 캠페인을 통해 임신이 쉽지 않은 부부를 불임이 아닌 난임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당시 한국난임가족연합회는 “불임이란 용어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성의 죄책감과 열등감을 부추기고 사회의 부정적 편견을 조장한다.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의미의 난임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2011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난임이란 용어가 처음 등재됐고, 2012년 모자보건법과 생명윤리법에 불임이란 용어 대신 난임으로 용어를 바꾸는 법 개정도 이끌어냈다.


임신 안 되면 1차 책임 여성에게 묻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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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게티이미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영역에서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고 남성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연구가 몇 년 전부터 대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신이 잘되지 않을 경우 여성은 적극적으로 병원에 가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과 과제’(2019) 보고서는 난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난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고 응답한 남녀 93명(여 50명, 남 43명)에게 병원을 자발적 선택으로 갔는지 물었다. 비자발적으로 갔다는 응답이 여성은 1.6%였는데, 남성은 20.1%로 높았다. 보고서는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그 원인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묻는 사회통념이 설문조사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성과 재생산의 영역에서 남성의 비가시화를 연구해온 김선혜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역할로 여겨온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남성은 재생산 의료 담론 속에 보조적인 위치에 한정되고 있다. 임신과 출산 자체를 여성만의 일로 생각하며 유산의 책임을 여성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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