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들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2017-02-03     남궁인

1.

응급실이 활기를 띠고 붐비는 시간은 사회가 에너지를 분출하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가정에서 정돈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땐 그만큼 사건이나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틀에서 나와, 거리에서 친구, 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자유롭게 하며 각자의 욕망이 서로 부딪힐 때 사건과 사고는 벌어진다. 그 숱한 사고들 중에서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친다면, 그 사고의 종착지는 근처에 있는 응급실이 되고, 곧 나는 그 생생한 단면을 수습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일정 반경 안에 있던 유희의 씁쓸한 종말들을 마주한다. 다만 그들은 사건을 수습하고 물리적으로 응급실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고와 나의 목격과는 시간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밤을 새우도록 끊임없이 이어진다. 고로 나는 대개 아침까지 그 사건들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

"담당이 너냐? 우리 형님 잘 좀 봐드려라." 그들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들 기세였다.

2.

나는 침대에 누운 환자를 마주하러 몸을 옮겼다. 원칙상 보호자는 한 명만 옆에서 대기해야 하지만, 그들은 수십 명이 곧 병원 침대를 들어 옮길 것처럼 옆에 딱 붙어서 환자를 수행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언제나처럼 그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들큼한 술김과 역겨운 담배 냄새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담당이 너냐? 우리 형님 잘 좀 봐드려라." 그들은 벌써부터 조롱 섞인 말을 쏟아내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들 기세였다.

"어떻게 하다가 다치신 겁니까?"

꼬이고 취한 어투였고, 희곡에서 뽑은 대사 같았다. 굳이 내가 의사가 아니었어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칼을 쥐고 이 사람에게 꽂았다. 나는 엄한 분위기에서 뜨악함을 속으로 삼키고, 열상의 깊이를 확인하기 위해 장갑을 낀 손으로 상처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은 쑥 들어갔고, 뜨거운 복강과 흘러나오는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장 천공 가능성이 높았고, 이 사람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중환이었다. 나는 즉시 설명했다.

그리고 역시나 환자에게선 기대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도 비슷하게 빈정거렸다.

마음이 푹 가라앉아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중환이 치료에 불응하는 상황. 하지만 이들에게 환자를 마주한 의사의 권위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의학적 원칙이나 사망 가능성에 읍소해본들 눈곱만큼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헛된 말인 줄 알면서도 원칙을 다시 호소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짧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원칙상 응급실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는 물을 포함한 금식이다. 더욱이 담배는 환자에게 상식적으로 안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원칙을 지킬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침대 옆에 서 있는 나를 세워두고 환자까지 전부 담배를 피우러 응급실 밖으로 우르르 나가버렸다. 이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도리는 없었다. 다른 일마저도 쌓여있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환자로 돌아섰다. 처치실에서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할퀸 여자 둘을 눕혀놓고 하나하나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마무리될 때쯤, 처치실 문으로 방금의 사내들이 소리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형님이 똥 마려우시댄다." 피칠갑한 와이셔츠의 사내는 정말 변이 마려운 듯 약간 더 비틀거렸고, 사내들은 같이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갔다. 경박하고 천박했고, 한편으로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 사이에서 의료진은 피로 범벅된 커다란 몸집의 환자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3.

인간의 대장은 오른쪽에서 올라가 위로 돌고 왼편으로 내려와 항문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오른쪽 대장 출혈은 항문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왼쪽 대장 출혈은 금방 항문까지 도달한다. 이 사람의 상처는 왼쪽이었으니, 일단 칼이 대장을 찢어버린 건 확실하다. 곧 잘린 장에서 쏟아지는 피가 직장을 가득 채웠고, 그는 참을 수 없는 변의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변기에 앉자마자 본능적으로 자신이 쏟아내는 것이 순전히 핏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직장 안의 압력이 갑자기 빠져나가며 출혈이 가속되자 삽시간에 의식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히 생명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 예감과도 같은 느낌이 온몸을 감싸자, 그는 자신의 꼴을 개의치 않고 핏줄기를 흘리며 기어 나와 문 앞에 쓰러졌다.

치료는 이제 순조롭게 진행될 참이었다. 그의 의식은 전혀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그에게 지금이라도 산소를 투여하고, 소변량을 체크하고, 수액과 피를 신청하고, 어깨 아래에 중심정맥관을 잡고, 외과를 연결해서 수술방으로 보내면, 환자는 그럭저럭 살 확률이 높았다. 방금 피가 쏟아지고 죽어가는 꼴을 봤으니 이제 사내들은 진료를 거부한다든지 당장 꿰매고 집에 가자는 말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4.

"치료가 이따위야. 능력도 없는 새끼가."

"이 돌팔이들이 계속 쓸데없는 짓을 하고 앉았냐."

내 권고를 듣지 않아 상태가 나빠진 것을 누구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런 말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누구든 알 수 있었다. 터무니없는 폭언이 쏟아지자, 주위에 있던 보호요원과 관계자들이 전부 몰려들어 응급실은 시정 잡배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제지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경찰서에 전화를 부탁했고, 곧 현장엔 경찰까지 등장했다. 다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내려온 외과 주치의는 피칠갑이 된 환자 한 명과, 난투극을 벌이는 한 무리를 당황한 모습으로 지켜보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에게 뛰어들었다. 나는 외과 주치의에게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환자는 아직도 의식이 없어 조용했고, 이제는 별다른 죄도 없어 보였다.

소란스럽고 다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엑스레이가 한 차례 혼란스럽게 지나가고, 중심정맥관이 도착했다. 주치의인 나만이 이것을 환자에 몸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가운을 벗어던지고, 멸균 장갑을 양손에 끼고 그의 어깨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액처치로 혈압을 약간 회복했고, 의식까지 조금 되찾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14게이지의 두꺼운 바늘을 들고 그의 어깨에 포를 덮었다. 이제 내 양손과 환자의 어깨는 전부 멸균된 상태였다. 여기에 소독되지 않은 것이 닿으면, 환자까지 감염될 수 있었다. 나는 쇄골 아래를 만지며 주사기의 각을 쟀다. 별안간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터무니없는 광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내는 너무 악한 나머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숙이고 환자의 어깨를 더듬어 그 자리에 14게이지 바늘을 꼽았다. 주사기에 정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쭉 찼다. 일단 혈관을 찾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순간 번쩍이는 별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니 내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그가 내 따귀를 후려친 것이었다. 나는 뭔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지만, 멸균된 손으로 환자의 몸에 주사기를 꼽은 상태라서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볼이 화끈거리며 아찔하고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 사내가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책임은 다시 전부 내 것이었다. 이 사람은 마구 행동하고, 모든 죄는 내가 짊어진다. 고개를 돌리자 다행히 주사기는 그대로 꼽혀 있었고, 내 손은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서 그 주사기를 버티고 있었다. 나는 소리 질렀다.

보호요원들은 심상치 않은 광경을 보고, 각자 잡고 있던 사람을 놓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 방 먹인 기세를 타고 계속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 손아귀로 보호요원들의 제지를 이겨내며 내 멱살을 거칠게 잡아들었다. 피부가 벗겨져 나갔으며, 옷이 죽 찢어져 내 맨몸이 드러났고, 발뒤꿈치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 손을 놓고 내 멱살을 잡는 손아귀를 막으면 14게이지 주사기는 허공에 매달려 환자의 몸에 박혀 있을 것이었고, 주삿바늘을 그대로 뽑는다면 그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것이었다.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어 주사기를 잡은 채 그의 손찌검을 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다. 보호위원이 멱살을 억지로 뿌리치자, 그는 내 얼굴을 마구 긁었고, 이제 훤히 드러난 상체에 계속 주먹을 뻗었다. 아픈 느낌은 없었고, 다만 수치스럽고 분해, 이 상황이 도저히 이 세상의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추가로 사람들이 더 달려와서야 제지되었다. 그가 떨어져 나가자, 내 육체가 능욕당해 마음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소독해둔 필드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붙들고 있던 중심정맥관을 마저 넣었다. 지옥같이 긴 순간이었다.

"경찰 진작에 갔어요. 아픈 환자의 보호자이고, 당사자가 고소하지 않을 흔한 난동이라나, 훈방조치래요."

5.

나는 상의를 벗은 채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의업의 신념이나 숭고함은 떠오르지 않았고, 다만 눈물이 났다. 하지만 환자를 수술방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내야 했고, 아직 응급실에는 토요일 새벽의 열기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으며, 내 근무는 여덟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돌아가야 했다. 나는 여분의 근무복을 입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간다.

"아니, 아까 경찰, 경찰 있었잖아요. 경찰이 분명 다 봤는데, 저 사람 안 잡아갔나요? 왜 아직까지 저 사람이 활보하고 있는 거죠?"

"..."

이윽고 칼을 맞은 환자가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안정적인 경과였다. 다행히 내 모멸감으로 한 사람과의 생명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은 응급실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일생 그들을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환자들의 명단과 응급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곳은 나만 견뎌내고 참아낸다면,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내겐 남아있는 긴 밤과 하소연할 곳 없이 망쳐버린 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폭언이나 폭력에 대한 인식은, 그 빈도나 무게에 비해 대중의 공감과 동떨어져 있다

이 글은 지어낸 글이 아닙니다. 여기 적힌 내용은 2010년, 실제로 제가 응급실에서 직접 겪었던 일을 기술한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항공기 비지니스석에 앉아 난동을 부리던 사람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악하고 풀린 눈빛으로, 당장 충동적으로 무엇이든 부수어 버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행동했습니다. 선량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영상으로만 봐도 가까이 가기 두려운 그였지만, 직업상 그를 제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나서 용감하게 그를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당했습니다.

그는 대중의 공분을 사고 단호하게 구속되었습니다. 항공보안법, 업무방해, 상해, 재물손괴, 폭행등이 그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실제 그는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항공기에 있던 수많은 이들의 담보로 자신의 유희를 즐겼고, 가중처벌받아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일말의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안전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고, 대중은 그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허나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폭언이나 폭력에 대한 인식은, 그 빈도나 무게에 비해 대중의 공감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이해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환자를 넘어선 그의 주변 환경과, 인간들까지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껏 제게 벌어졌던 난동과 폭언들을 최대한 헤아리고픈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폭력에 관한 인식이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은 안타깝습니다. 병원 내의 난동은 아직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폭력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의료인폭행가중처벌법이 간신히 통과되었지만, 그 후로도 폭행 피의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던 일은 거의 없습니다. 현장에서 공권력은 대개 방관하고, 현실적으로 환자를 이해해야 하는 의사가 처벌이나 실형을 강력하게 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의료진은 그 악하고 풀린 눈빛을 받아내고만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고, 누구나 인간을 험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신념과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번만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공공의 안전도, 모두의 생명도 걸린 문제지만, 그것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문제 말입니다. 자신이 인간의 마음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의 행동이 다른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정말 나쁜 행동이라고 인지하며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위험에 처한 모든 사람이 불쌍하다고, 그것을 어떤 사람이든 힘들게 여기며, 때론 간신히 버텨낼 것이라고 말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