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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연합뉴스

연산군이 폭군이 된 것은 어머니 폐비 윤씨가 쫓겨나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부터다. 이후 연산군은 미친 듯 쾌락에 몰두했다. <연산군 일기>를 읽어보면 그는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전근대의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쾌락의 극한까지 가려 했던 자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그가 벌인 황당한 짓거리와 비판자들에 대한 잔혹한 처벌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뒤 교동도에서 홀로 조용히 숨을 거둘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그에게는 큰 다행이었다.

광해군 역시 반정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뒤라서 그런지 연산군처럼 엄청난 물자를 쓰면서까지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반정을 일으킨 자들은 광해군이 계모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것을 반정의 빌미로 삼았지만, 그 깊은 속내는 권력을 탈취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동서고금 왕의 권력을 두고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형과 아우가 살상하는 하는 일은 허다했으니, 그 정도의 이유로 쫓겨난 광해군은 좀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연산군의 폭정도 나름 이유가 있다거나 광해군이 억울하다든가 하는 말을 힘주어 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폭군으로 낙인찍힌 왕들이 쫓겨난 뒤의 일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쫓겨난 뒤 가장 큰 이익을 본 자들은 누구였을까? 반정에 참여했던 자들, 그래서 공신이 되었던 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양반의 부림을 받던 노비가 해방되었을까? 땅이 없던 소작인이 땅을 분배받았을까? 농민에게 부과된 과중한 세금이 줄어들었을까? 아니, 백성의 처지는 바뀐 것이 전혀 없었다. 정변이 일어나 폭군이 축출된 사건은, 오로지 극소수 지배층의 손에 국가권력을 쥐여주었을 뿐이었다.

촛불이 박근혜를 탄핵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이 혁명은 최종적으로 나와 우리의 삶에, 나와 우리의 삶을 옥죄었던 모순의 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절반밖에 못 받는 일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법과 민주적 절차를 지키라고 요구했다가 여전히 해고 통보를 받거나 핍박을 받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수자라서 차별을 받는 일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슬픔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1894년 동학혁명으로 궁지에 몰린 고종과 민씨 정권은 청(淸)과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여 농민군을 진압했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외국의 군대를 불러들여 제 나라 백성을 학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저들은 그렇게 이 땅을 지배해 왔다. 어떤 더러운 짓을 해서라도 권력을 손에 놓지 않았다. 2016년 지금 이 땅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와 친박과 새누리당은 그렇게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수명이 다한 낡은 거죽을 벗어던지고, 호사스런 새 거죽을 뒤집어쓰고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촛불을 들고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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