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하는 자사주를 취득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되,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소각은 18개월 유예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에 자사주 보유비율이 높은 상장회사들이 대처 방안 마련에 고심하는 가운데, 특히 제약사들은 자사주 맞교환이나 처분의 방법으로 이를 낮추는 데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사주 비율이 높은 제약사들끼리 자사주를 교환하거나,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들에게 자사주를 처분하는 방식을 많이 쓰고 있다. 대웅, 광동제약, 환인제약 등이 대표적이다.
광동제약이나 환인제약의 경우 이 같은 방식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제를 회피하고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다만 이들 기업의 경우 자사주 소각 이외의 방법을 통해 소각 의무화 규제를 우회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제약사 자사주 비율 순위에서 상위권에 있는 안국약품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안국약품의 자사주 비율은 12.86%로, 이는 제약사 중 일성아이에스(46.15%), 대웅(27.70%), 현대약품(18.33%)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 어진 회장 등 오너 지배력 탄탄, 자사주 처분 서두를 필요성 못 느껴
26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안국약품은 지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자사주를 꾸준히 사들였다. 2009년 말 기준 자사주 비율은 14.9%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이 비율은 대체로 유지돼 왔다.
안국약품은 자사주를 매입할 때마다 주주가치 제고와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지급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안국약품의 자사주 보유를 두고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어진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봤다. 자사주에 배정된 신주를 통해 지배력을 늘리는 ‘자사주 마법’을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2016년 지주회사에 대한 자산총액 요건이 1천억 원에서 5천억 원으로 강화되면서 안국약품의 지주회사 설립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2016년 말 기준 안국약품의 자산총액(별도기준)은 1878억 원에 그쳤다. 2025년 9월 말 기준으로도 2915억 원에 머무른다.
물론 지주사 설립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인적분할을 추진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24년 12월31일부터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시행되면서 자사주 마법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개정 시행령에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안국약품 오너인 어진 회장은 자사주 활용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 회장이 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이전에 자사주 처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안국약품의 경우 오너의 지배력이 탄탄한 편이기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장사는 자사주를 주로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보유해 왔다. 경영권 분쟁 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넘기는 이른바 ‘백기사’ 전략을 쓰기 위해서다.
안국약품의 경우 어진 회장(43.22%)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48.22%)의 지분율이 높아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강화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자사주 맞교환이나 처분을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어진 회장이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후 실제로 규제가 명문화되고 나서야 구체적인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안국약품 주가가 매우 저평가돼 있는 만큼 소각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1월23일 기준 안국약품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6에 그친다. 이 때문에 안국약품은 3차 상법 개정에 따른 수혜주로도 언급되고 있다.
이 밖에 자사주 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는 자사주 처리 계획에 대해 묻고자 안국약품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