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다이내믹 프라이싱(수요 기반 실시간 가격 설정)'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이미 우리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다이내믹 프라이싱 규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혀 향후 입법화될 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주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플랫폼 시장의 독점력 남용과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다이내믹 프라이싱 규제는 온라인플랫폼 법안(온플법) 제정과도 관련돼 있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8일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쿠팡의 최저가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와 관련해 ‘다이내믹 프라이싱’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향후 정부여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플랫폼 법안에 내용이 담길지 관심이 모인다.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고정시킨 '정가'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 시장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동시키는 가격 전략을 뜻한다. 우리말로 '가변 가격제'라 표현되기도 한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쿠팡을 통해 무선청소기를 구매했는데 19만9천 원이었던 가격이 하루도 안 돼 19만4천 원으로 5천 원 내렸다거나 오전에 70만 원대 였던 공기청정기 가격이 점심시간 무렵 50만 원 후반대로 떨어졌다는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올해 6월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 티켓가격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하기로 했다. 조별리그 경기부터 경기 중요성과 주목도 등에 따라 1등급~4등급까지 분류하고 수요와 연동해 티켓 가격을 세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더 싼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플랫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바꾸는 방식이 과연 시장의 효율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소비자를 ‘봉’으로 만드는 정보 비대칭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지를 따져봐야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얼핏보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작동 원리를 최대한 반영해 효율성을 높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보비대칭'이라는 어두운 측면도 존재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플랫폼이 가격을 변동시키는 원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AI와 알고리즘 뒤에 숨어 '수요 조절'이라는 명분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고 소비자는 같은 서비스를 더 비싸게 이용하면서도 정당한 이유를 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남경 KB금융 선임연구원은 2024년 5월 펴낸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누구를 위한 가격전략인가'라는 보고서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소비자의 혜택과 기업의 이익을 증대하는 유용한 전략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소비자의 이해 및 신뢰가 없는 기업의 일방적 도입은 기업 이익을 위한 ‘가격 인상 꼼수’로 인식되며 불필요한 오해를 확산시킬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다른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이 판매가를 낮추면 쿠팡이 곧바로 최저가로 낮춰 가격 경쟁 자체를 제한하는 효과가 발생하고 최저가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을 입점 판매자에게 전가해 납품업체도 다른 이커머스를 통한 할인 판촉 참여를 꺼리게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올해 1월 중앙일보는 쿠팡 입점업체 셀러 10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셀러들이 쿠팡의 ‘자동 최저가 맞춤(다이나믹 프라이싱)’ 마케팅 때문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작용 원리 그래프. ⓒKB금융지주 보고서
현재 공정거래법이나 전자상거래법을 확대 해석해 적용한다면 잘못된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해 사후적 규제가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주 위원장은 현행 공정거래법과 전자상거래법 만으로는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하는 온라인플랫폼 기업들의 규제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온플법을 제정하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 규제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 위원장은 1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디지털 시장에서 이 많은 데이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 책정 방식인데 이런 방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법 위반 행위들이 많이 발생한다”며 “이런 걸 대처하려면 현행법만 가지고서는 하기 어려워 온라인 플랫폼 산업에 적합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 일각에서 우리나라의 온플법 추진이 쿠팡 등 자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라 주장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국 측에 온플법 제정이 쿠팡을 차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 온라인플랫폼 기업이 많아진 상황에 제대로 된 규제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해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2일 우리나라의 디지털 규제 정책과 입법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했다.
김 정책실장은 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쿠팡과 관계없이)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압도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플랫폼에 대해 거기에 걸맞은 규제나 감독 체계가 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숙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플법 제정을 추진하는 이유가) 쿠팡과 관계없다고 설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