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첫 주자로 나서면서 발생한 사태와 관련해 논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우원식 국회의장이 발언을 제지하기 위해 마이크를 끄는 초유의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나 의원의 이번 필리버스터는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은 10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에 있었던 필리버스터 파행과 관련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문대림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나 의원이 보여준 본회의장 필리버스터는 토론의 외피를 쓴 정치 쇼에 불과했다”며 “국회법이 보장하는 무제한 토론은 책임 있는 논의를 위한 장치인데 나 의원은 이를 홍보용 퍼포먼스로 변질시켜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나 의원은 9일 본회의에서 민주당의 '8대 악법' 철회와 '대장동 항소 포기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하지만 토론 대상 법안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내용을 벗어나 일반 정쟁 현안에 대한 발언을 이어가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강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무관한 발언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한 만큼 토론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 나 의원은 발언권 제한 시간이 길어지자 무선 마이크로 보이는 장치를 차고 발언을 이어가려 하기도 했다. 나 의원 측은 과거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본희의장에서 마이크를 착용했다며 강 의원 사진과 함께 증거를 제시했으나 강 의원 측이 “마이크가 아닌 녹음기였다”고 밝히자 나 의원도 ‘녹음용 마이크’였다고 정정했다.
결국 우 의장 지시로 나 의원이 발언을 시작한 지 13분 만에 마이크가 꺼졌다. 국회의장이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것은 1964년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이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이크를 끈 이후 61년 만이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마이크 전원이 꺼진 뒤 18분 만에 다시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됐지만 같은 맥락의 발언이 이어지자 마이크는 다시 꺼졌고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 우 의장은 정회를 선포했다.
국민의힘은 과거에도 필리버스터 의제와 무관한 발언이 있었다는 선례를 들며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 의원의 마이크를 끈 것은 ‘폭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펼칠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을 한 민주당 의원을 두고 “어떤 것이 의제 내이고 어떤 것이 의제 외인지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규칙이나 법 조항은 없다”고 말한 점을 짚은 것이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9일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 정지로 본회의가 정회된 뒤 취재진과 만나 “향후 의장 마음대로 국회법에 규정된 필리버스터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조치”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 중단 사태는 발언 내용의 의제 이탈 논란을 넘어 그의 태도와 돌발 행동으로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국회의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려 한 행동은 국회 질서와 절차에 대한 불손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나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 전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결과적으로 마이크가 꺼진 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은 토론자로서의 ‘설득력’이나 중진의원으로서 ‘품격’을 보여주기보다 회의를 혼란하게 만든 ‘주인공’이라는 이미지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에게는 ‘투사’로서 이미지를 남길 수 있겠지만 일반 중도층에게 나 의원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쳐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특히 나 의원은 이른바 ‘국회 빠루 사건’으로 불리는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충돌 국면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지난 11월20일 법원으로부터 벌금 2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10일 MBC 라디오 뉴스바사삭에서 “나 의원이 발언대에 들어가면서 국회의장에게 인사도 안 한 것도 이례적인 건데 '꼴보기 싫다'는 모습으로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