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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무관한 초등학교 자료 사진. ⓒ어도비 스톡
기사와 무관한 초등학교 자료 사진. ⓒ어도비 스톡

“20년 뒤 오늘 학교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선생님과 제자들이 실제로 올해 1월1일 만난 사연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선생님은 제자들을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 “살아보니 꼭 뭐가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20년 만에 제자들과 만난 이장규(56) 전남 용방초등학교 교장은 10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대부분의 제자들이 여전히 밝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뿌듯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20년 만에 만난 제자 가운데 ‘선생님이 기대했던 제자가 못 돼 죄송하다’며 자신이 꿈꾸던 직업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구구절절 문자로 보낸 친구가 있었다”며 “아직 인생 많이 남았고, 살아 보니 꼭 뭐가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그때그때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줬다”고 했다.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1일 전남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과 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겨레/이장규 제공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1일 전남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과 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겨레/이장규 제공

2004년 전남 영암초등학교 6학년 2반 담임교사이던 이씨는 2005년 1월 졸업식 날 제자들에게 “20년 뒤인 2024년 1월1일 오후 1시 영암초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약속은 1992년 교사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이씨가 매년 담임을 맡은 학생들의 글을 모아 만든 학급문집 ‘어깨동무’에 기록돼 6학년 2반 학생 35명의 책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었다.

으레 하는 빈말로 남을 뻔한 약속을 기억해 낸 제자들은 약속한 날을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29일 이씨 블로그 문을 두드렸다. 제자 ㄱ씨가 “20년 뒤 만나자고 하신 약속을 기억하냐, 꼭 뵙고 싶다”고 댓글을 달자, 다른 동급생들도 “감사한 게 많아 꼭 찾아뵙고 싶었다”, “저도 찾아갑니다”며 호응했다.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04년 담임을 맡았던 전남 영암초등학교 6학년 2반 제자들에게 나눠준 학급 문집 ‘어깨동무’. ⓒ한겨레/이장규 제공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04년 담임을 맡았던 전남 영암초등학교 6학년 2반 제자들에게 나눠준 학급 문집 ‘어깨동무’. ⓒ한겨레/이장규 제공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04년 담임을 맡았던 전남 영암초등학교 6학년 2반 제자들에게 나눠준 학급 문집 ‘어깨동무’. ⓒ한겨레/이장규 제공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04년 담임을 맡았던 전남 영암초등학교 6학년 2반 제자들에게 나눠준 학급 문집 ‘어깨동무’. ⓒ한겨레/이장규 제공

이씨는 “그동안 발행한 학급문집을 다시 보니 ‘밀레니얼’ 열풍이 불었던 2000년 전후 딱 세 해에만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문집에 넣었다”면서, “3년 전쯤 폐교한 학교 운동장에 혹시나 싶어 가 보니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35명 중 절반이 넘는 18명이나 운동장에 나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자들이 건넨 인사 중 ‘하나도 늙지 않았다’, ‘우리를 이렇게 다시 모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년 전인 2004년 영암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지난 1월1일 20년 만에 재회해 포옹하고 있다. ⓒ유튜브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이 20년 전인 2004년 영암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지난 1월1일 20년 만에 재회해 포옹하고 있다. ⓒ유튜브

20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들이 회포를 풀기에 점심시간 한두 시간은 너무 짧았다. 이에 이씨는 제자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이씨는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편지 또는 메시지로 꼭 써서 보내 달라고 했더니, 정말 몇 명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고 했다. 제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답장을 해줬다고 한다.

이씨는 “교실에 한시간 있으면 그 중 58분은 너무 힘들지만 2분 정도는 아이들 눈빛이 예쁠 때가 있다”면서, “교직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엄청난 큰 기쁨보다도 그 찰나의 기쁨이 고통을 상쇄해 준다. 젊은 교사들이나 내 제자들이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느끼고 간직했다가 자꾸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1일 전남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든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과 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겨레/이장규 제공
'20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1일 전남 영암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든 이장규 용방초등학교 교장과 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겨레/이장규 제공

20년 만의 재회의 순간은 이씨와 제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두고두고 꺼내 볼 ‘찰나의 기쁨’으로 남았다. 제자 임은지씨가 지난 8일 선생님과 만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영상이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유되며 ‘감동적이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모두가 포기했을 때 유일하게 나를 믿고 도와주신 음악선생님이 그립다”, “최근 선생님들을 눈물짓게 하는 일이 많았는데 사람이 왜 배우고 가르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영상이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씨는 “우리끼리 모여 소소하게 노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다는 게 뜻밖이었다. 요즘 사회가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학교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남아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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