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물에 젖은 이끼 냄새가 고요히 머물던 정원이 떠오른다. 평균 기온 38도, 습도 100퍼센트의 날이 계속되던, 일본에서도 무덥다고 소문 난 교토의 여름 중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좋아하는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주저할 것 없이 교토를 선택했지만 한여름 밖에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래, 아무리 덥다고 해도 냉방시설 잘 된 일본에서 큰일이야 나겠어.’라며 오기를 부려 봤는데...... 그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그래서일까. 이끼 냄새는 더욱 짙게 코끝에 남았다.
예부터 전해진 일본의 전통 가옥을 ‘마치야町家’라고 한다, 그 중 교토의 전통 가옥은 특별히 ‘교마치야京町家’라고 부른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문 겨울보다는 덥고 습한 여름을 나는 게 중요했기에 교마치야는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로 지었고 작은 정원을 두어 물과 식물을 가까이했다. 한 달 살기 숙소로 이미 원룸을 골라 놓았지만 며칠 정도는 옛날 가옥에 묵어보고 싶었다. 한 채를 통째로 빌려주는 게 대부분이라 혼자 묵기는 부담스러워 매일매일 집요하게 에어비앤비 검색 페이지를 갱신하며 찾고 또 찾았다.
교마치야가 늘어선 기온 거리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공간. 후기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등록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호스트는 내 또래 부부였고 19세기에 지어진 교마치야를 개조해 운영한다고 숙소 설명에 쓰여 있었다. 간결하고 섬세한 문장에서 호스트의 성격이 보였다. 후기가 없어 불안했지만 교토는 워낙 자주 방문했고 잘 아는 도시였기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한 달의 마지막 사흘을 그 숙소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정갈한 실내
토메이씨 부부는 그들이 쓴 글처럼 단정하고 차분하게 나를 맞아줬다. 버스 정류장에서 5분 거리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땀을 흠뻑 흘린 날 보더니,
“우선 땀부터 좀 식히세요.”
라며 집의 가장 안쪽인 정원으로 안내했다. 해가 잘 드는 입구와는 달리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정원. 교토에 옛집에 정원을 둔 이유를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할까.
이끼 정원
한숨 돌린 후 안으로 들어오니 식탁 위에 고사리 전분으로 만든 교토의 전통 떡 와라비모찌와 녹차가 놓여 있었다. 웰컴 푸드를 앞에 두고 대화가 이어졌다. 원래 유서 깊은 포목상이 자리했던 이 건물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녹차와 교토의 명물 와라비모찌
“근데 둘이 살기엔 좀 넓더라고요. 저희 연애할 때 같이 여행 많이 다녔거든요. 좋은 호스트도 많이 만났고, 친구 돼서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기저기 수리를 많이 했지만 기본적으로 오래된 건물이라 손이 많이 가서 이젠 이 집을 비우고 여행을 가는 건 좀 힘들겠죠. 그래도 제가 태어난 도시에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일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단정한 주방
교토 토박이인 토메이씨 부부가 나고 자란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숙소 구석구석에 ‘메이드 인 교토’가 놓여 있었으니까. 정원에 무심하게 놓인 유리 공예도 장인의 작품이고 세면대는 교토의 전통 도자기인 ‘키요미즈야키’라니. 후기가 없어 불안했던 마음이 미안할 정도로 토메이씨 부부의 마치야는 마음에 쏙 들었다.
교토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만든 세면대
동년배인데다 여행, 그리고 교토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짐을 풀 생각도 않고 만나자마자 한 시간 넘게 내리 수다를 떨었고 나는 며칠 남지 않은 교토 일정을 온전히 토메이씨 부부의 추천에 맡겼다. 집에서 옛 궁궐과 드넓은 정원이 있는 교토 교엔(京都御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교토를 떠나는 날, 아침 산책을 하는 토메이씨 부부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서울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궁궐인 덕수궁을 안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몇 년 째 지키지 못하고 있는 약속이지만 언제라도 지킬 준비는 되어 있다. 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 세계에서 오는 여행자를 맞이하는 그들보다 내가 교토에 다시 가게 될 날이 더 빨리 오게 될 것만 같다. 초록의 여름 냄새가 가득할 즈음, 다시 이끼 정원에 앉아 있을 모습을 그려본다.
해가 잘 드는 내 방
여행작가 양미석 : 한 번에 한 나라, 한 도시만 느릿느릿 둘러보며 30년 일정으로 세계 일주 중. 사랑하는 곳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은 없지만, 막상 여행 작가가 되고 보니 이젠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책 작업을 할 때 가장 즐겁고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여행을 다녀온 독자를 만날 때 가장 기쁘다.
** 해당 페이지는 에어비앤비가 직접 편집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필자에게는 원고료가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