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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도할 수 없다" 엘리자베스 2세가 남긴 식민 지배라는 유산과 아프리카 국가들

"여왕의 유산은 식민주의에서 시작되었고 아직도 식민주의에 싸여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 트위터.
출처: 게티이미지, 트위터.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역사의 상징적인 인물이 세상을 떠나며 누군가는 그의 업적을 기리고, 누군가는 그가 가졌던 상징성을 높이 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죽음에 애도만을 표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핍박받아야 했던 아프리카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나는 애도할 수 없다

2015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Photo by Sean Gallup/Getty Images)
2015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Photo by Sean Gallup/Getty Images)

CNN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엘리자베스 2세는 식민주의의 상징일 뿐이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에 "나는 애도할 수 없다"며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마우마우(MauMau--케냐 키쿠유족(族)이 1950년대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했던 무장투쟁단체)가 핍박당했던 기간은 1952~1960년이다. 1920년대에 태어난 우리 조부모 중 대부분은 억압받았다. 사진은 우리 할머니의 통행권이다. 나는 애도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통행권의 사진을 올렸다. 이 '통행권'이란 영국이 식민지배 당시 아프리카 국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했던 식민지 문서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952년 2월, 2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친할머니의 사진과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다고 밝히며 "(피해 국가 국민들이 영국군들에게) 어떻게 구타당했는지, 어떻게 할아버지를 빼앗기고 홀로 남아 아이들을 돌봐야했는지 할머니에게 들었다"며 "할머니는 시력을 잃었지만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기를.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는 말을 전했다. 

1895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던 케냐는 1920년, 영국의 공식 식민지로 지정되며 1963년에서야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케냐 국민들에 가해진 끔찍했던 잔혹 행위 중 하나는 1952년 마우마우 반란 당시 일어났다. 

영국 정부는 약 15만 명의 케냐인이 수용되어 있던 수용소에서 거세, 성폭행 등 잔인한 고문을 강행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노인이 된 2011년이 되어서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법원은 1천990만 파운드(약 319억 원)를 5천 명 이상의 피해자에게 분할 보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Photo by Geoff Pugh - WPA Pool /Getty Images)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Photo by Geoff Pugh - WPA Pool /Getty Images)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윌리엄 헤이그는 "영국 정부는 케냐인들이 식민지배를 받으며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학대를 자행하며 케냐의 독립을 막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한 바 있다. 

CNN과 인터뷰한 미국 케네소 주립대의 페루크 크페로기 교수는 아프리카 대륙이 여왕에 가지는 기억은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과 분리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여왕의 유산은 식민주의에서 시작되었고 아직도 식민주의에 싸여 있다"며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져 왔다. 여왕의 죽음으로 인한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심도 그 (상처)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1967년에서 1970동안 벌어진 나이지리아 내전 속 영국의 역할을 떠올리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당시 분리 공화국을 형성하고자 했던 비아프라인들을 제압하던 나이지리아에 비밀리에 무기를 제공해 왔다. 이 전쟁으로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가수 존 레논은 전쟁 내 영국의 역할에 항의하기 위해 명예훈장인 MBE를 여왕에게 반납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내 영연방 국가들

엘리자베스 2세의 통치 기간을 "독특하고 멋지다"고 묘사하며 추모한 나이지리아 대통령 무하마두 부하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왕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야당 중 하나인 '경제자유투쟁당(EFF)'은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의 죽음은 우리나라와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매우 비극적인 시기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영국과의 교류는 고통과 죽음,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했던 사건이었다"는 입장 또한 덧붙였다.

물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 1947년 공주 직책으로서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엘리자베스 2세는 통치 기간동안 120회 넘게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넬슨 만델라를 포함한 지배자들과 결속을 다져온 그는 1961년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대통령과 함께 무도회에서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61년 가나의 콰메 은쿠르마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출처: 게티이미지
1961년 가나의 콰메 은쿠르마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출처: 게티이미지

하지만 지금은 노예제 등 영국의 과거 범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중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2021년까지 영연방에 소속되어있던 바베이도스는 지난해 11월, 독립 55년 만에 공화국을 선언하며 영국 왕이 국가 원수로서 가졌던 자격을 모두 해임했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 또한 공화국 수립에 대한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자메이카를 방문한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공작부인 또한 이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방문 기간 동안 노예제도와 왕실의 연관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포함,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 요구에 직면해야 했다. 

조지 4세의 식민 지배 시절 만든 다이아뎀을 착용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Photo by Tim Graham Picture Library/Getty Images)
조지 4세의 식민 지배 시절 만든 다이아뎀을 착용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Photo by Tim Graham Picture Library/Getty Images)

당시 노예제도와 식민지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자메이카의 단체 '애드보캐츠 네트워크 자메이카'는 편지를 통해 "당신의 할머니는 왕좌에 있던 70년 동안 영국이 아프리카에 가해온, 우리 조상들을 고통받게 했던 착취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며 영국의 인신매매, 노예, 식민지 제도에 일침을 가했다. 그중 일부는 엘리자베스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일어나기도 했다.

이제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의 왕위를 물려받으며 영국의 새로운 국왕이 됐다. 영연방을 이끄는 것 또한 그의 몫이 된 지금, 그가 영연방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문혜준 기자 hyejoon.moon@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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