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행된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 공판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비롯한 일부 경영진이 산업재해 이후 확대된 노조 움직임에 대응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7일 열린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일부 경영진들의 노동조합법 위반혐의 공판에서 이들이 노조 활동을 견제하려고 했다는 정황을 증거 자료를 들어 설명했다. 사진은 SPC삼립 본사. ⓒ연합뉴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열린 SPC그룹 전·현직 임직원의 ‘노동조합법 위반혐의’ 공판에서 허 회장과 일부 경영진이 노조 활동을 견제하려 했다고 보고 관련 정황과 증언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노조 조직 현황과 비가입자 명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이른바 ‘종합장’ 활용 여부와 노조 변화 과정 전반에 회사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종합장’이 노조 관리 및 통제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황재복 전 SPC 대표의 “민주노총과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을 사실상 노조 탈퇴 작업을 지시한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종합장’의 작성 시점이 검찰이 주장하는 시기와 다르다는 점을 들어, 이 자료가 특정 노조 활동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노조별 가입현황과 조직률을 정리한 내부 관리용 자료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황 전 대표의 발언 역시 즉각적 조치 지시라기보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의견 표현에 가까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처럼 구체적 증거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리고 있어, 재판 결과를 통해 사실관계가 규명될 때까진 양 측 주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SPC그룹 내부에서 노조 조직률과 가입 현황을 정리한 자료 체계가 존재했고, 동시에 노사 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입장 차가 반복되면서 그 갈등의 협의와 조정의 형태로 봉합되기보다는 외부적으로 표면화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SPC그룹의 조직 관리 방식, 노조 통제 논란
노조 측은 SPC그룹이 노조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종린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SPC그룹은 전반적으로 노조에 대한 혐오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한 시선이 깔려있고, 노조 조합원의 현황과 인적사항 등을 일일이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며 “지금 재판과는 별개로 삼립의 또 다른 계열사인 SPL에서도 노조 가입 노동자들을 불러 괴롭히고 진급을 차별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조 측은 SPC그룹의 통제적 관리 방식 속에서 현장 노동조합이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동조합이 현장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독립적인 교섭 주체라기보다, 회사의 노무 관리 기능을 일부 대체하는 수준으로 역할이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제기했다.
임 지회장은 “(이러한 회사의 입김 속에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회사의 노무 관리를 대신하는 기구로 전락해버리면서 내부 환경이 바뀌지 않고 있다”며 “회사와 대화를 시도하고 노사 협약을 맺어도 현장의 중간급 간부들이 현장의 애로사항을 수용하지 않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현장 노동 강도와 작업 속도를 둘러싼 실제 갈등 사례도 제기됐다. 삼립 계열 공장 내 ‘샌드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편의점용 햄버거나 샌드위치 생산 라인의 속도가 과도하게 빨라 근골격계 질환 등 건강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한국노총 측 소식지에서는 “속도를 줄이면 거래처가 끊겨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기며, 작업 속도 조정 문제를 둘러싼 노조 간 시각 차이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안전대책 강화에도 현장과의 간극은 여전
노조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아무리 잘해보자고 대화를 하고 협약을 맺어도 현장에서는 변화가 체감되지 않고 있다”며 “중간급 관리자들은 여전히 과거 관행대로 현장을 관리하고 있고,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영향력 아래에서 보호받는다”고 말했다.
SPC가 그룹 차원에서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강화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개선 효과가 체감되지 않거나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SPC그룹은 매 사고 마다 현장 안전 관리 대책을 마련해왔다.
2022년에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혼합기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허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3년 동안 1천억 원 규모의 안전 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그 뒤 SPC그룹은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산업안전보건 진단’을 실시하고, 외부 전문가와 현장 직원이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신설해 안전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안전경영선포식을 열고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동시에 안전경영 체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그룹 차원의 비전도 제시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는 유사 사고가 이어졌다. 2023년 8월에는 샤니 성남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SPC그룹은 1천억 원의 안전 투자 금액 가운데 샤니에 배정된 180억 원가량의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5월에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SPC그룹은 이 사고 이후 관련 설비는 모두 철거·폐기하고, 합동 안전점검 모니터링 체계를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안전보건 관리 인력을 확대하고, 생산라인별 주 1회 가동 중단을 통해 설비 점검을 의무화하는 등 운영방식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일부 라인에서는 4조 3교대 시범운영을 도입해 근무 부담을 분산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안전경영위원회를 통한 안전간담회를 확대하고, 안전 핫라인과 스마트 안전 제안 시스템을 구축해 상시 소통 채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SPC그룹은 최근 같은 공장에서 또 다시 손가락 절단 인명사고가 발생하자, 화섬식품노조와의 특별교섭을 통해 ‘노사공동 안정문화 정착을 위한 합의문’을 마련했다. 합의문에는 정기 위험성 평가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조가 모두 참여하는 방안, 전 직원 대상 안전보건 특별교육 연 2회 실시, 작업중지권 행사에 따른 불이익 금지, 4일 이상 업무상 재해 시 산재 처리 원칙 등 안전·산재 대응 기준 강화 내용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