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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박지현 ⓒ박지현 페이스북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라고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희한한 상황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트북 화면에 고개를 파묻고 있어야 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말’을 무기로 삼는 정치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옮겨 적기 위해서다.

6·1 지방선거 운동 기간 막바지였던 5월25일,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가 시작될 무렵에도 여느 날처럼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갑작스레 사과문을 발표해 당을 흔들었던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런 말들을 쏟아내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역할은 거의 완수했습니다.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날은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박 위원장을 제외한 회의 참석자 대다수는 586 중년 남성 정치인이었다. 면전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권고받은 이들의 얼굴은 아름답지 않게 굳어졌다. 한 참석자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색깔을 바꿨고, 짧은 순간 박 위원장을 쏘아보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도 박 위원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 뒤 당내에는 시끄럽게 소란이 일었지만, 관전자 처지에선 그 순간의 여운이 꽤 길었다.

‘박지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대선을 앞둔 올 1월 무렵이었다. 엔(n)번방을 처음으로 쫓았던 ‘추적단 불꽃’의 익명 활동가가 민주당에 영입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2월에 영입하고도 발표를 못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남자(20대 남성) 눈치보기’ 정치의 기세가 맹렬할 때였다.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는 선대위에 남초 커뮤니티 글을 돌렸고, 성평등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던 유튜브 채널 출연도 번복했다. 안 그래도 ‘이남자 표심’이 달아나는 상황인데 ‘불꽃’ 영입 사실까지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는 우려가 선대위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활동명 ‘불’의 선대위 합류는 결국 1월 말이 돼서야 공개됐다.

당의 대대적인 환대 속에 이뤄진 합류가 아니었다. 영입 직후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이미지만 ‘이용’되는 건 아닌지 에두르지 않고 물었다. 박 전 위원장도 답을 에두르지 않았다. “민주당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반성에 제 역할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경력을 정치에 이용하지 않고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겠습니다.”

86세대 정치인들의 요동치는 얼굴을 ‘직관’하면서, ‘반성에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정치 입문 뒤 박 전 위원장은 기존 민주당이 용인할 수 있는 발언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다. 비대위원장이 된 직후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 조문을 문제 삼았고, 강성 지지층의 응원을 받던 ‘검수완박’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최강욱 의원 성희롱 발언 논란 당시 문자폭탄 속에서 제보자를 보호하려 했고, ‘내부총질’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폭력적 팬덤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용인’의 임계점에 ‘86세대 용퇴’라는 그날 회의 발언이 있었다.

그는 많은 순간 외부자의 시선을 잃지 않은 드문 민주당 정치인이었다. 그의 특별함은 여의도식 상황 논리에 휘둘리지 않은 비타협성에 있었다. 다만 돌아보면, 한계도 적지 않았다. 강렬한 ‘86 용퇴론’과 대국민 사과는 결국 외로운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그를 가까이서 눈여겨보는 이들, 특히 비대위에서 호흡을 같이했던 당 관계자 가운데 ‘그가 우군을 너무 많이 잃었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는 단기필마의 기예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5월 <한겨레>에 실린 칼럼 제목처럼 ‘민주당에는 더 많은 박지현이 필요하다’. 동시에 정치인 박지현에게도 그와 함께할 더 많은 박지현이 필요하다. 그는 정치 입문 뒤 인터뷰에서 활동가 시절 품었던 ‘분노’에서 한발 나아가 ‘연대와 변화’를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박 전 위원장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다. ‘86 용퇴’를 말했던 정치인 박지현의 결기가, 언젠가 더 많은 우군을 얻게 될 수 있길 바란다.

 

한겨레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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