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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독일화를 우려한다
ⓒASSOCIATED PRESS

얼마 전 타계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는 1960년대부터 유럽통합을 주창해온 독일의 대표적인 유럽주의자였다. 그는 독일통일의 문제도 유럽적 관점에서 파악했다. 그에게 독일통일의 본질은 '독일을 유럽화할 것인가', '유럽을 독일화할 것인가'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문제였다. 그가 민족국가를 복원하는 형태의 통일에 반대한 것은 통일독일이 전후 반세기 동안 유럽의 평화를 유지시켜온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이 과거 군사력으로 정복하지 못한 유럽을 이제 경제력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서독과 동독이 이미 진행중인 유럽통합의 과정에 합류하여 '유럽이라는 하나의 집'에 동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럽화되는 길로 나아가길 그는 소망했다. 그의 '반통일론'은 1990년을 전후한 동서독 통일공간에서 당연 환영받지 못했고, 그는 독일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최근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그리스 위기'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그라스였다. 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국가부채 문제라기보다는 '유럽의 독일화'의 한 국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유럽의 관계는 지극히 모순적이었다. 독일은 근대 유럽 '정신혁명'의 주도자였지만, 동시에 언제나 유럽의 문제아였다. 유럽을 황폐화시킨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건 모두 독일이었다. "유럽문제는 곧 독일문제"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유럽문제는 곧 독일문제였기에, 유럽통합에 있어서도 독일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독일이 처한 역사적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유럽통합의 3대 장애물을 제거해야 할 과제가 독일에 부여되었다. 첫째, 나치즘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청산을 통해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해야 했고, 둘째, 동서냉전의 상징인 동서독 분단을 극복해야 했으며, 셋째, 미래 독일의 패권주의에 대한 주변국의 불안을 불식시켜야 했다. 독일은 나치과거 청산, 분단 극복, 주변국의 신뢰 회복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냄으로써 유럽통합의 걸림돌에서 유럽연합의 견인차로 변신할 수 있었다. 독일이 유럽통합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이 과정에서 쌓아온 '도덕적 권위'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번 그리스 위기는 전후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했다. "독일 정부가 독일이 반세기 동안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하룻밤 새 탕진해버린 게 아닌지 우려된다"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적은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다. 문제는 경제논리가 아니라 역사의식이다. 독일은 모든 것을 돈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탄의 맷돌'(칼 폴라니)을 거부하고, 인간과 역사의 가치를 중시해온 분단시대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독일은 유로존과 유럽연합 형성 과정에서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 되었다. 독일의 경이로운 경제성장은 잠재해 있던 민족주의 정서를 일깨웠다. 국가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도덕적 권위가 수출 강국의 경제적 자만심으로 대체되는 '수출민족주의'(오스카 라폰텐)가 확산되는 현상은 오늘날 독일에는 가장 위험한 독이다.

독일 최고의 수출품은 메르세데스-벤츠도 폴크스바겐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는 독일 헌법 제1조이고, "환희가 날개를 펼치면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된다"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이다. 독일 헌법 제1조는 유럽헌장 제1조로, '환희의 송가'는 유럽연합가로 '수출'되었다. 수출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인본주의, 사해동포주의로 복귀하는 것 - 이것이 독일이 나아갈 길이요, 유럽이 살아날 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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