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임기 초반 실적 개선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LG전자가 지난해 실적이 부진했던 만큼 류 사장의 어깨가 무거웠지만 경영 보폭을 한층 넓힐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다만 실적 개선세를 유지하고 경영 역량을 가늠할 변수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류 사장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압박을 제어하고 로봇과 냉난방공조(HVAC) 신사업 부문에서 시장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LG전자
20일 전자업계 안팎에 따르면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회사의 근원적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순조로운 출발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구체적 사업부별 경영실적 발표를 앞둔 LG전자는 1분기 연결기준 매출 23조7330억 원, 영업이익 1조6736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매출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3% 뛴 수치다. 특히 영업이익은 기존 시장기대치(컨센서스)도 21% 웃돌았다.
지난해까지 LG전자는 2년 연속으로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축소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주력 사업에서의 중국 업체들의 추격, 미국 관세 리스크 등이 겹친 탓이다. LG전자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조4784억 원으로 2년 사이 32% 감소한 것이다.
이에 LG그룹은 지난해 11월 말 근원적 제품 경쟁력 강화와 사업체질 개선을 주도할 새 리더로 류 사장을 LG전자 새 대표로 세웠다. 1분기부터 실적 회복이 뒷받침되면서 류 사장이 미래를 도모하기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류 사장은 올해 3월23일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됐다.
LG전자의 설명과 증권업계의 분석을 근거로 보면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생활가전(HS)과 미디어엔터테인먼트(MS) 사업이 1분기 우수한 수익성 확보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에서 HS 사업은 29%, MS 사업은 22%를 차지한다.
LG전자의 1분기 부문별 영업이익 추정치에 따르면 HS 사업은 영업이익 6천억 원가량, MS 사업은 3800억 원가량을 올렸다. 1년 전과 비교해 HS 사업은 소폭 감소했지만 MS 사업에서는 70배 이상 급증한 실적을 거둔 것이다. HS 사업은 비우호적 대외환경 속에서도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방어를, MS 사업은 운영 효율화와 함께 프리미엄 제품 확대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1분기 호실적이 점쳐진 이후 증권업계의 연간 실적 추정치도 상승했다. 임기 첫해 류 사장이 내리막 이전의 영업이익을 곧바로 회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LG전자는 연결기준 매출 92조5983억 원, 영업이익 3조5994억 원을 거둘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와 견줘 매출은 4% 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영업이익은 45% 증가하는 것이다. 2023년 영업이익 3조6533억 원과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전망치다.
LG전자 리더로서 출발선을 경쾌하게 지나는 류 사장에게는 숙제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신사업에서 실질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점에서다.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전쟁은 개시 2개월이 가까워져 가는 가운데 향후를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갯속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LG전자가 지난해 기준 해외 매출이 전체의 59%에 이르고 주요 원·부자재의 공급망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류 사장의 경영 난도가 한층 높아진 셈이다.
이날 파키스탄에서 미국과 이란의 2차 협상이 재개될 예정된 가운데 이란은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대이란 해상봉쇄 조치가 유지되면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해상봉쇄를 뚫으려던 이란 화물선에 미국이 발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금씩 휴전으로 가까워질 것이라는 전망에 또 다시 큰 변수가 생겼다. 로이터통신 등 해외언론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의 발포 행위가 기존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곧 보복에 나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아직 세부 실적발표 이전인 만큼 중동 전쟁이 LG전자에 미치는 구체적 수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HS 사업부 등에서 강도 높게 진행한 원가구조 개선 효과로 1분기에는 전쟁의 충격을 상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당장 2분기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증가 등에 따라 더 큰 부담이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부피가 큰 HS 사업의 대형 가전 등은 운송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LG전자는 1분기 냉난방공조(HVAC)의 ES(에코솔루션) 사업에서 유일하게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한 실적을 거뒀다. ES 사업이 다른 사업과 비교해 중동·아시아 사업 비중이 높은 특징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분기 중동 전쟁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확인된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는 '글로벌 사우스 지역 성장 가속화'라는 류 사장의 핵심 전략에 대표 국가이기도 하다. 중동 전쟁이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서 류 사장이 그린 밑그림에도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인 셈이다.
이주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정비 축소와 프리미엄 제품 확대 등은 분명 긍정적 요소"라며 "그러나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주요 원재료인 레진을 비롯한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상승과 물류비 상승,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류 사장은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한 로봇 사업과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HVAC 사업에서 시장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가시적 성과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은 LG전자의 핵심 성장동력이자 미래 기업가치 상승을 이끌 무기로 꼽힌다. AI 가전을 기반으로 하는 LG전자가 방대한 양의 생활환경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홈로봇' 사업을 확장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류 사장은 올해를 '로봇 사업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목표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홈로봇 사업과 함께 로봇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해 글로벌 로봇 제조사에 공급하는 기업간 거래(B2B) 부품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액추에이터는 회전력을 만드는 모터,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드라이버, 속도를 조절하는 감속기 등을 조합한 모듈로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한다. LG전자는 올해 1월 CES 2026에서 로봇용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AXIUM)'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류 사장은 3월 정기 주총에서 "올해 안에 액추에이터를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양산 체계를 갖추겠다"며 "피지컬 AI와 로봇 관련 기술의 발전이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올해를 '로봇 사업 본격화'의 원년으로 삼고 세부 전략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HVAC 사업에서는 AI 데이터센터용 기술들이 이 분야 신사업으로서 중장기 성장판을 키울 지렛대로 평가받고 있다. LG전자는 국내에서 2029년까지 진행될 전북 완주군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참여해 열을 식히고 제어하는 칠러, 온·습도를 조절하는 컴퓨터룸 공기처리장치(CRAH), 냉각수 분배장치(CDU)인 액체냉각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사업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해외에서는 올해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열린 공조 관련 전시회에 참여해 북미, 유럽,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AI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기회를 확장하는 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칠러 수주 실적은 1년 전보다 3배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김종배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LG전자 ES 사업은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영향으로 사우디 생산법인의 물류비 인상 및 전반적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며 "앞으로 HVAC 관련 신사업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시점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