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30대 직장인 A씨는 아메리카로 한 잔을 먹기 위해 카페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하지만 화면은 끝이 없었다. 샷 추가 여부, 얼음 양, 컵 종류까지. 선택지를 하나 누를 때마다 또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결제창에 다다르기도 전에 인내심이 먼저 바닥났다. 결국 A씨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냥 안 먹고 말지"
# 2. 70대 노인 B씨는 햄버거를 먹으려 매장을 찾았다. 하지만 키오스크 앞에 선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화면 가득한 메뉴와 작은 글씨들 길게 이어지는 주문 과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몇 번이나 손을 뻗다 망설였다. 뒤에 줄이 점점 길어지자 결국 B씨는 주문을 포기하고 "먼저 하세요"라고 말하며 조용히 옆으로 물러났다.
# 3. 시각장애인 C씨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을 찾았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했다. 키오스크에 이어폰을 꽂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다시 꽂아보고 화면을 눌러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C씨는 한참을 서 있다가 조용히 손을 떼고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여기서 주문하면 되나요?"
휠체어 이용자와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AI 합성 이미지.
이제 키오스크는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 잡았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는 물론 대형마트 셀프 계산대, 영화관, 지하철역, 병원과 주민센터 같은 공공 서비스 영역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최근에는 식당 테이블마다 태블릿 주문기가 놓이며 결제 방식 자체가 무인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건비 상승에 대응해 인력 부담을 줄이고 주문·결제 과정을 효율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이후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고 프랜차이즈 중심의 키오스크 시스템 표준화가 맞물리면서 빠르게 보편화됐다.
6일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내 교통카드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2026.4.6 ⓒ연합뉴스
키오스크는 주문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디지털 관문이다. 키오스크는 화면을 빠르게 터치하고,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으며, 복잡한 주문 절차를 이해할 수 있는 이용자를 표준 사용자로 전제하고 설계돼 있다. 겉보기에는 기술의 진보처럼 보이지만 그 설계에는 배제된 사람들도 있다.
고령층의 패스트푸드점 이용은 늘고 있지만, 키오스크의 복잡한 인터페이스와 조작 방식은 때로는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은 글씨, 외래어, 단계가 많은 주문 과정, 카드 결제 중심 구조 등은 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을 준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고려한 키오스크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관련 연구들은 이 문제를 단순한 키오스크 불편이 아닌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접근권 문제로 짚는다. 모두에게 편리해야 할 이 무인 단말기가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디지털 문턱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장애인 이용자에게 더욱 직접적인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휠체어 이용자는 화면 상단에 손이 닿지 않거나 빛 반사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시각장애인은 물리적 버튼이 없는 터치스크린 앞에서 헤맨다. 이어폰 단자가 있어도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거나 기기 관리 소홀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부에서는 ‘굳이 키오스크를 쓸 필요가 있느냐, 직원에게 주문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인력 축소로 대면 주문이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어 이용자에게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누구나 동등하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배리어 프리 키오스크가 서울시 한 카페에 설치돼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월 28일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가 전면 시행됐다. 키오스크는 장애인의 이용 편의를 위해 음성 안내, 화면 확대, 접근성 개선 등 정당한 편의 제공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법적 근거는 있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시행령에서 일정 규모 이하 사업장에 예외를 두고, 보조 인력이나 도움벨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동등한 이용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바닥 면적 50m²(약 15평)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도움벨 설치로 대신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 장애인 단체는 1월 13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키오스크 관련 시행령이 장애인 접근성 보장 기준을 완화해 헌법상 평등권과 접근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물론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일반 기기보다 수백만 원 더 비싼 가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의 교체 비용 지원 예산은 전체 수요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접근권을 주장하는 장애인 단체와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소상공인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결국 누구나 이용할 권리라는 문제는 뒤로 밀리고 논쟁은 비용 부담의 문제로만 다뤄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키오스크는 AI 기반 행정 서비스로까지 한계가 확장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AI 휴먼 기반 대화형 민원상담 무인안내기(키오스크)를 운영하고 있지만 복잡한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이용자는 답답함을 느끼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결국 사람 직원에게 넘어가 감정 노동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능을 갖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관리 부실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설계 단계부터 실제 이용자의 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형식적 배리어 프리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사후 단속과 벌금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 설계와 도입 단계부터 접근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다른 한쪽에서는 키오스크 이용 문제를 교육을 통해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와 기관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을 확대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기마다 제각각인 화면구성과 잦은 업데이트로 학습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 신체적 제약이 있는 이용자에게는 적응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사용자에게 적응을 요구하는 데 그칠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접근성 중심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