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적 취득자'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미국이나 호주와 같이 대규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부유한 나라들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만이나 일본,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은 매우 드뭅니다. 더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독재 국가나 나이지리아 같은 극빈국의 국적을 따려 한다면 터무니없게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저한 독재 국가이며 찢어지게 가난한 북한의 국적을 따는 사람은 있을까요?
북한의 국적 취득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 국적을 취득하는데 필요한 '공식' 절차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귀화 희망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요구하는 국적 취득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기만 하면 됩니다. 신청 서류가 심사를 통과하면 그 순간부터 희망자는 북한 인민이 될 수 있습니다.
참 쉽죠? 동아시아에서 조건 없이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북한 귀화자는 북한 여권과 더불어 자신이 태어난 국가의 여권을 지니는 것도 허용됩니다. 물론 모국이 북한과 같이 이중 국적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의 나팔수에 불과합니다. 즉,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은 김정은의 허락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북한의 이중 국적 취득 과정은 북한 국내법의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매번 국적취득 허락을 김정은이 하는데 굳이 법적인 제약을 걸어놓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죠.
동무를 환영합네다!
당연히 김정은 입장에서도 아무에게나 국적 부여를 하지는 않습니다. 유럽에서 북한 정권을 홍보하는 스페인 출신 데 베노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열광적인 추종자라는 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차피 인민 대부분이 주체사상 신봉자인데 굳이 귀화를 받아들여 국내에 주체사상 신봉자 수를 늘려봐야 북한 정권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내부 통제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이득이 외부인을 북한과 같은 폐쇄적 사회에 받아들일 때의 위험성을 훨씬 능가할 때 귀화를 받아들입니다. DMZ에서 근무를 하던 미군 병사가 위대하신 영도자의 품에 몸을 맡기고자 할 때와 같은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은 환대를 받으며 북한 국적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북한 국적 취득 신청자의 대부분은 정중한 거절을 당한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당신의 국적 취득을 허락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놀랍게도 당신은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습니다. 북한 법은 국민이 출국 할 때만 비자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입국 시에도 비자를 반드시 요구합니다.
귀화자는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될 것이며 당신의 '출신 성분' 또한 기록이 부여됩니다. 당신의 가족 중 한민족 혈통을 지닌 사람이 없다면 당신의 성분은 '외국인'이 될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기하자면 '해외 출신'이 되겠군요.
'해외 출신'은 북한의 출신 성분 중에서도 중상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분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외 출신은 특별 계층과 핵심 계층 사이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북한 사회에서 당신의 진출을 막을 것은 거의 없으며 더 나아가 조선로동당에 가입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당 가입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따릅니다.
일단 인민군 총사령관이 귀화를 허가했다 해도 북한 당국, 특히 국가안전보위부는 '주체사상의 낙원' 바깥에서 수년 간 살아온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 국적을 취득한 해외 귀화자는 북한 인민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사상 교육을 면제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 국적 취득자는 누가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북한 국적 취득자는 고려인이 있습니다. 고려인은 1940년 말기 북한의 행정을 휘어잡은 계층입니다. 1940년대 말 북한 지도층 인사들이 포함된 이들 고려인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느슨한 이중 국적 정책 덕분에 1957년 12월까지 이중 국적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후일 북한을 선택한 고려인의 대다수는 정치 숙청의 피바람에 희생되어 소수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북한 국적을 취득한 고려인 중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야코프 페트로비치 남, 우리에게는 남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한 이 4성 장군은 후일 북한 외상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방학세라고 알려진 니콜라이 이냐테비치 판은 북한 보위부를 창설했으며 북한 초대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방학세는 후일 1950년대에 걸쳐 행해진 숙청 과정을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그 숙청 바람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박헌영도 희생되었습니다. 방학세는 1992년 사망하기 전까지 권력의 최정점에 머물렀으며 사망시에는 북한 중앙재판소장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머물렀던 그는 북한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잔학한 인물이었습니다.
두 번째 귀화인 그룹은 화교입니다. 북한에서 화교 지위를 유지하면 1940년대에는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중국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등 광범위한 특권을 누렸기 때문에 화교들을 굳이 북한 국적을 취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사정이 달랐으니 1966년, 북한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경색되자 북한은 화교들에게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강요합니다. 그들이 마주한 선택은 북한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조건 하에 중국으로 완전히 떠나거나, 중국 국적을 말소하고 북한 국적을 취득하거나, 하루 수백 그램에 불과한 곡식 외에는 모든 공적 배급체계에서 배제된 채 화교로서 북한에서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시기를 전후로 북한의 화교는 급속히 사라지게 됩니다.
1971년, 중국 수상 저우언라이가 평양을 방문하자 북-중 관계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과거 화교의 신분을 저버린 이들에게 다시 중국 국적을 얻어낼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북한의 화교들은 그들의 신상 정보가 기재된 문서를 북한 보위부에 넘겨줘야 했습니다. 둘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신청자의 북한 국적을 말소시켰습니다. 셋째, 신청자는 자신이 무국적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에 제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중국 여권을 받음으로써 중국인 신분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오늘날의 화교들 또한 북한 국적을 획득할 수 있지만 그를 통해 얻는 이득이 미미하기에 화교의 북한 국적 취득은 잘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재일교포와 아프리카의 엘리트들
가장 소수에 해당하는 세번째 북한 국적 취득 그룹은 북송 재일교포와 결혼한 일본인 배우자들입니다. 재일교포 수만명이 '자유로운 조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에 입국한 비극적 사연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따라서 북한에 동반 입국한 일본인 배우자들의 이야기는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북한 국적에 귀속되었으며 북한 정부는 그들의 일본 국적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될 북한 국적 취득자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북한에 귀화한 이들로서 가장 소수입니다. 이들은 주로 북한과 친분이 있는 아프리카 국가의 출신으로 혁명이나 쿠데타로 순식간에 지위를 잃고 고국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바깥세상과 소통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으며 북한 당국도 이들의 외부 접촉을 막는 경향이 있으므로 더 자세한 정보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상과 같은 북한 국적 취득자는 북한 인민중 극소수를 차지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을 단일 민족 국가로 보긴 어렵지만 그 구조상 사실상 단일 민족에 근접한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쓴이 효도르 테르티스키(Fyodor Tertitskiy)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안재혁이 번역하였으며, 메인 일러스트레이션은 Cammy Smithwick의 작품입니다. 원문은 여기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