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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길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의도치 않은 오해를 만든다. 그 어원이 영어(feminism)이기 때문에, 서양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우리나라는 그 역사가 길지 않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 토박이 말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길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는 모계 사회였다. 일족이 계보를 유지하고 부흥하기 위해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세계 각지의 고대 종교에 순산을 다스리는 신이 있을 정도였다.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출산은 그만큼 성스럽게 여겨졌고, 여성은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도 놀라울 정도의 남녀 평등적 면모가 있었다. 최용범의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예전 우리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페미니즘의 일면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당대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가령 신라에서 고대 모계사회가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오랫동안 유지된 것도 가부장을 내세우는 유교사상이 신라에 가장 늦게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1. 한국사의 여왕 세 명은 모두 신라에서 나왔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길다

“…신라는 남녀차별이 거의 없을 만큼 여성의 지위가 어느 시대보다 높았던 점을 들 수 있다. 여자도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경제권도 쥐고 있었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절에 시주를 한 기록도 나온다. 또한 혼인을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편의 지위와는 별도로 계속해서 보장되었다.” (책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여왕을 세 명이나 배출한 나라가 있다. 바로 신라이다. 신라시대에 27대 선덕여왕과 28대 진덕여왕, 그리고 통일신라말에 진성여왕이 있었다. 이들은 신라의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로서 당시 사회가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얼마나 평등한 곳이었는지 반증해주고 있다.

신라의 경우 성골신분이 아니면 왕위에 오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유일한 성골이 여성이면 그녀가 왕이 될 수 있었다. 선덕여왕의 경우 당시 유일한 성골이었기 때문에 한국사 최초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신라의 여성들은 상속권, 경제권이 보장되었으며, 결혼을 하고도 남편과는 별도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신라의 여왕은 제도와 문화의 자연스러운 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 발해에는 '매춘업'이 없었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길다

“…첩을 둘 수 없었던 발해의 남자는 바깥에 나가서도 딴 짓을 할 수 없었다. 신라와 중국은 물론이고, 주변 부족인 거란이나 여진족에도 있었던 홍등가, 창녀 등이 없었다.” (책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저)

모든 역사에는 대세를 거스르는 예외가 있다. 모두가 해도 꼭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발해가 그랬다. 발해에는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 흔히 말하는 매춘업이 없었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발해의 남성들은 첩을 둘 수도 없었다. 신라나 중국에서는 귀족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첩을 많이 거느렸다니, 발해가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강력한 여권 때문이다. 설령 발해 남자가 몰래 첩을 두었다하더라도, 남편이 외출하면 부인들이 공모해 그 첩을 독살했다는 기록까지 전해진다. 이렇게 일부일처제가 확고했기 때문인지 발해의 무덤 중에는 부부 합장묘도 많다.

발해에 대한 문헌을 살펴보면 발해의 여성들은 씩씩하고 용맹한 인물로 비추어진다. 가령 중국 동북부지방에서는 ‘홍라녀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홍라녀라는 발해 여인이 장군이 되어 거란과 싸움에 나가 이긴 뒤 남편을 구해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또한 실제로 발해에서는 절을 할 때도 남자는 무릎을 꿇고 하는데, 여자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다.

3. 고려의 여성은 집안을 대표하는 호주가 될 수 있었다.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길다

“…당연히 여자도 집안을 대표하는 호주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권리가 보장된 만큼 부모에 대한 의무도 남자와 균등하게 졌다.” (책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의 권리는 남성과 거의 대등하게 보장받았다. 여성의 권리보장에 있어서 큰 변화가 온 시기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만큼,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종합해서 보았을때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는 상대적으로 근래에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재상 박유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첩을 두자는 건의를 올렸다가, 부녀자들로부터 ‘첩을 두자고 건의한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온갖 비난을 뒤집어 썼다. 결국 박유는 자신의 건의를 포기했는데, 이 정도로 고려 여성들의 힘이 강력했다.

또한 고려의 여성들은 재산도 아들딸 구별 없이 상속받을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딸이 재산을 다 물려받고, 어린 아들은 옷 한 벌, 종이 한 장밖에 상속받지 못해 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자가 집안을 대표하는 호주가 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도 남자와 똑같이 졌다. 가령, 부모에 대한 봉양도 아들만큼 했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도 ‘윤행’이라 하여 아들과 딸이 번갈아 제사를 맡아 지냈다. 이혼도 남자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양방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었다. 여자들의 재가가 자유로운 만큼 이혼율도 상당히 높았다. 당시 송나라의 사신이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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