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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양국이 4년반 간의 협상끝에 원자력 협정안에 합의했다. 청와대는 동 협정을 "과거 협정상의 일방적 의존과 통제체제에서 벗어나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은 풀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선진적이고도 호혜적인 신협정"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언론은 일제히 동 협정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리의 핵 자율성을 확대했다, 우리의 핵주권을 확립했다는 등 찬사를 쏟아내었다. 그런데 미국쪽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4월 22일자 개제된 뉴욕타임스 기사는 동 협정이 영구적으로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불허한다 ("continues to deny")고 소개했다. 한 미국 학자가 필자에게 왜 한국 언론은 도대체 이 협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인지 물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각각 다른 협정안에 서명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우리 정부가 가뜩이나 어려운 정국이 더 악화되는 것을 우려해 협상의 성과를 부풀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필자는, 민주시민으로서 또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동 한미원자력 협상 결과를 평가하고자 한다. 미리 밝히건데, 필자의 의도는 대한민국의 농축 및 재처리의 필요성을 피력하려는 것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원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원자력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득이 크고 단기적으로는 대안이 뚜렷하지 않아, 현재 우리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하다. 이 글의 초점은 정부의 제시한 협상 결과의 진위를 파악하고 정부의 협상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 정말 한국 성과인가

4월 22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협정에 가서명한뒤 교환하고 있다.

첫째, 과연 이 협정이 정부가 말한대로 그동안 금지되어 왔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는가? 농축과 재처리 기술은 우리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원료를 생산하거나 쓰고 남은 핵폐기물을 재활용하는데 쓰이지만 핵무기를 제조하는데도 이용될 수 있다. 현재 국제법상 평화적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법규가 없기 때문에, 미국은 양자 원자력협정을 이용, 상대국의 원자력 산업을 원조해 주는 대신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약속을 받아내 왔다. 대한민국도 '74년 한미원자력 협정에 따라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지난 4년반 동안 농축과 재처리 기술이 우리의 핵원료 공급안정성 제고와 핵폐기물 해결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미국이 이를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신협약에는 이러한 우리 정부의 요구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아직 원문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은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이 필요할 경우 향후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합의해 추진할 수 있으며, 우리가 재처리의 대안으로 연구, 개발하고 있는 파이로 프로세싱의 사용 여부도 향후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미 우리의 파이로 프로세싱 사용을 허가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미 파이로프로세싱의 일부 단계만을 허용한 것이지, 이 기술을 재처리에 사용하는데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농축이건 파이로 프로세싱이건 향후 미국의 협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미국이 우리 정부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언어 선택을 신중히 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구협정이나 신협정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미국법상 미국산 우라늄이 농축이나 재처리에 사용될 경우에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 민감한 사안에 관해 미국의 협의를 끌어낼 가능성도 크지 않다.

둘째, 정부는 동 협정이 농축과 재처리를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gold standard'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매우 성공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 매체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원자력협정을 맺을 때 꼭 포함시켰던 이 조항이 이번 한미 협정에선 빠졌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gold standard에 동의한 나라는 UAE(2009)와 대만(2014) 단 두 국가이다. UAE는 어차피 현재 원자력 기술을 갖추지 않아서 이 조항이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데다, 미국이 다른 중동 국가와 원자력 협정을 체결할 때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무효가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대만도 특수한 경우다. 물론 선진 핵기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토가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점을 고려, 현재 가동 중인 3개의 원전 모두 라이센싱이 끝나는 시점에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즉, 이런 상황에서 굳이 미국의 gold standard 요구를 거부할 이유가 크게 없었을 것이다. 사실 gold standard가 워낙에 주권 침해 요소가 짙어 미국 의회내에서도 이에 대한 회의감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조항 때문에 국가들이 미국 대신 프랑스나 러시아 등과 원자력 협정을 맺을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따라서, 지난 3월 체결된 미-베트남 원자력 협정도 이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미원자력 협정이 gold standard를 포함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셋째, 청와대와 언론은 동 협정 서문이 우리의 평화적 핵이용권과 주권불가침 권리를 인정했다며, 동 협정이 기존 협정의 불평등적인 요소들을 제거했다고 자축했다. 그런데, 국제협정에서 서문은 보통 좋은 규범과 원칙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법적 효력이 있는 세부적인 규정들을 보면 그런 원칙이나 규범들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협약의 경우 서문에서는 국제협력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중요성, 인류의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 등을 거창하게 얘기하다가, 정작 CO2 배출 축소 등에 관한 세부 조항은 이렇다할 협력을 이뤄내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서문의 내용에 근거해서 정부가 계속 요구해 왔던 평화적 핵주권 보장과 한미간 불평등 해소를 얻어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신 정부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일본이나 인도에 비해 많은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1988년에 일본에게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미일 협정 체결 당시에는 핵확산 위협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만 현재는 농축과 재처리 기술이 확산되는 것이 민감한 문제로 부각했다면서 한일간 형평성 문제를 일축해 왔다. 그렇다면 2008년에 체결된 미-인도 원자력 협정은 어떤가? 인도는 NPT (Nonproliferation Treaty: 비확산기구) 비가입국으로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내법과 국제규약까지 수정해 가면서 인도와의 원자력 협력을 결정했다. 또한, 지난 4월초 합의된 이란핵협상 틀에 따르면, 미국은 현 이란의 역량보다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란의 농축과 재처리 활동을 인정했다. 요지는, 대한민국은 여태까지 국제규범을 잘 준수해 왔을 뿐 아니라 2010년 핵안보회의를 개최할 만큼 핵비확산에도 앞장을 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한 농축과 재처리에 대한 제재를 받는 반면, 인도와 이란은 국제사회를 핵확산의 위협을 제고시켰음에도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한미원자력협정에 비해 개선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측의 동의를 받을 필요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 물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우리의 원전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협상에서 우리는 미국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 우리 정부는 정부가 꼭 얻어 오겠다고 주장했던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 능력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국 전문가들로부터 우리 정부에 핵전문가가 없어 협상이 힘들다는 불만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어, 혹시 우리의 역량이 부족해 협상에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뿐만 아니라, 양보를 많이 했으면 생색이라도 내며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낼 궁리를 해야지, 우리가 큰 성과를 이룬 양 좋아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문제는 법제처가 검토하게 될 동 협정의 국회 비준 필요성 여부이다. 국제협정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국내에서도 법 효력을 갖게 된다. 외교는 행정부의 영역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드는 주체는 입법부이므로, 국제협정은 국회 비준을 거치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적합한 일이다. 나경원 의원은 40년 전 협정이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았다면서, 동 협정의 비준 필요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40년 전 대한민국은 민주 국가가 아니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향후 20년 동안 국내 경제, 에너지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적 효력을 가진 협정인 만큼, 국회 비준을 거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한미원자력 협정 비준 과정이 우리의 에너지 정책, 원자력 정책에 대한 국민의 여론도 수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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