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PVC 등 저가 원료부터 고부가가치 완제품까지 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위치를 업그레이드 하는 중이다. 외신은 세계 각국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또 태양광 패널 제조 장비 등 핵심 기술과 설비의 수출은 제한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의 공세로 다른 나라의 생산 기반을 약화하면서 주요 기술과 설비의 공급을 통제해 중국 의존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공장 노동자들이 2019년 2월 12일 중국 저장성 후저우의 한 공장 태양광 발전 부품을 생산하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3일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중국 정부가 핵심 육성 산업으로 지정한 화학 기업들의 수출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특히 PVC 수출을 늘리면서 한국 등 기존 공급국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중국 화학업계, 정부 지원 받아 인도·유럽 시장 공략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일(현지시각) "중국은 불과 5년 만에 일부 분야에서 화학 생산 능력을 거의 2배로 늘렸고, 어떤 제품은 세계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정치 싱크탱크 로듐그룹의 제레미 스미스 분석가는 2일 미국 상공회의소의 요청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중국 생산자들이 생산과 공급망 전반에서 외국 경쟁업체를 대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도 시장에서 중국산 PVC의 점유율은 2020년 3%에서 2025년 45%로 급증했다. 반면 일본·한국·대만의 시장점유율 합계는 같은 기간 56%에서 34%로 하락했다. 로듐그룹은 중국 화학업계가 산업 정책과 보조금의 혜택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중국 화학업계는 한국 화학업계의 주요 수출 시장인 유럽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4월에서 2026년 3월에 걸친 유럽연합(EU)의 중국산 PVC 수입량은 직전 1년 간에 비해 1249.7% 증가했다. 이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9월23일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유럽에서 폐쇄 예정인 화학 공장의 설비 용량은 2022년 290만 톤에서 2025년 1720만 톤으로 6배 증가했다. 스미스 분석가는 값싼 중국산 화학제품의 대량 유입이 중국이 직접 진출하지 않은 산업 부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자제품부터 자동차,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제품에 화학제품이 유입돼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익성 높은 제품 분야에서도 물량 공세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로 시장을 잃은 다른 나라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저가 제품을 앞세운 시장 공략을 수익성 높은 제품 분야로 확대하는 동시에, 자국이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완제품과 제조 기술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로듐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과거 외국 기업이 주도했던 고수익 제품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 화학업계는 2025년에 고부가가치 원료인 스티렌 생산량을 2020년에 비교해 97% 늘렸다. 중국의 스티렌 수출량도 2020~2025년 사이 매년 40% 이상 증가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세계 각국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기 위해 자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의 제조 장비와 기술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년 10월20일 중국 구이저우성 첸시 진란 마을의 산비탈에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돼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2일 "중국은 10월부터 드론, 인공지능(AI) 모델 및 에이전트, 첨단 의약품 개발에 사용되는 특정 공정, 태양광 패널 제조 공정 등 수십 가지 기술의 수출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이런 조치 전반은 미국 등 다른 국가 기업들이 중국 제조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태양 에너지 장비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또 이는 머지않아 중국 외의 누구도 최첨단 고성능 중국산 AI 모델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고속철도와 신재생에너지, 통신 등 주요 산업에서 중국이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목적은 자급자족 능력을 높이고 다른 국가들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시도 억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10월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통신/AP통신=연합뉴스
이 같은 전략은 과거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희토류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분석가들을 인용해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큰 효과를 거두어 미국 등 여러 나라가 대체 공급원을 찾기 시작하자, 중국이 기술 및 장비 수출 통제를 통해 새로운 협상 카드를 확보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출 통제가 중국 경제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중국 경제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중국 정부의 기술 개발과 보호에 대한 집착이 중국에서 막대한 자원 낭비를 초래했다"며 "이는 경제 성장 둔화와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수출 통제가 다른 나라의 탈중국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케네디 연구원은 "이런 식의 위협을 통한 거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도와 유럽에서는 중국의 수출 통제에 대응해 대체 공급처를 찾거나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2024년부터 터널 굴착기 수출을 제한하고 10월19일에는 이를 수출 통제 품목에 추가했다. 이에 인도는 다른 공급업체를 찾았다.
10월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연말까지 중국의 EU 단일 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청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 수출 통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 비영리 싱크탱크 탁샤실라 연구소의 프라나이 코타스타네 첨단 기술 지정학 프로그램 책임자는 뉴욕타임스에 "중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기본 장비까지 수출 통제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중국이 어떤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도 산업적 영향력을 이용해 맞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