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업가치와 관련해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AI 산업의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로 호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투자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를 확대할수록 반도체 수요는 늘어나지만, 동시에 막대한 투자비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이러한 부담으로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늦춘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가파른 실적 성장세 역시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는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메타와 스페이스X는 올해 3분기 매출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대규모 설비투자로 잉여현금흐름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 증시에서는 두 회사를 비롯한 AI 관련 기업들에 매도세가 이어졌다.
AI 투자에 따른 수익이 막대한 투자비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 회의론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자금조달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2026년 10월15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및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폭락 : 호실적과 미국 빅테크 AI 투자 확대 발표에도 투자자들 매도세 이어진다
23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10월1일부터 22일까지 31% 이상 하락했으며, 20일에는 장 중 한때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15일 전 거래일보다 9% 이상 급락했으며, 10월1일부터 22일까지 22% 이상 떨어졌다.
특기할 만한 점은 두 회사가 현재 매우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 미래 전망 역시 장밋빛인 상황에서도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8일 연결 기준 매출 195조 원, 영업이익 107조4천만 원 규모의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시장에서 예상하는 엔비디아의 3분기 영업이익인 95조 원을 웃도는 규모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2일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직전 분기보다 32% 증가한 80조1천억 원을 기록해 시장 기대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향후 실적 전망도 밝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0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2027년 영업이익을 555조 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6년 전망치보다 51% 늘어난 수준이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도 13일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이 405조 원으로, 2026년 전망치보다 57%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제시됐다. 김동원 본부장은 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2027년 메모리 생산 예정 물량의 약 80%를 이미 장기 공급계약으로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 세계 반도체 공급망 지탱한 미국 빅테크, AI 투자 지속 가능성 우려 제기돼 : 투자자들 신뢰 잃고 있어
문제는 '반도체 고점론'이 떠오르면서,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호실적을 지탱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가 갑작스럽게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실제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이러한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빅테크들의 '현금흐름'에 노란 불이 켜져있는 상황에서도 빅테크들이 투자를 줄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메타는 3분기 잉여현금흐름에서 21억2천만 달러(약 2조8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잉여현금흐름 적자를 낸 것이다. 이는 3분기에 349억1천만 달러(약 46조3천억 원)를 기록한 AI 인프라와 서버·데이터센터에 대한 대규모 지출이 주요 원인이다.
스페이스X도 3분기 잉여현금흐름에서 약 99억6천만 달러(약 13조2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설비 지출은 약 195억9천만 달러(약 26조 원)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84%가 AI 관련 인프라에 투입됐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AI에 투자하고 있지만, 여기에 걸맞은 수익을 거두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빅테크 기업에서 등을 돌리게 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능력에 타격을 준다.
2026년 9월 28일, 미국 뉴욕시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거래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22일 투자자들 사이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수익률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자문기업 다코타웰스의 로버트 파블릭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로이터통신에 "지출 증가, 잉여현금흐름 적자, 지출에 비해 충분한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 상황이 투자자들에게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메타의 순이익이 3분기에 3배 증가하고, 스페이스X는 3분기에 첫 흑자를 달성했음에도 23일 이들 기업의 주가가 하락했다.
최근 미국의 높은 물가상승률과 휘발유·디젤 가격 상승으로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고금리로 빅테크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도 보인다.
로이터통신이 경제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0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전원이 연준이 오는 12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