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격과 희소성을 앞세워 가치를 키워 온 명품 산업이 시장과 사회 양쪽에서 도전에 직면했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중고 시장 매물이 늘면서 재판매 가격이 고점보다 크게 낮아졌다. 프랑스에서는 고물가와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며 루이뷔통·디올·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이 약탈 표적이 됐다. 명품을 되팔아 얻는 프리미엄은 줄어드는 반면, 명품을 향한 반감은 거세지고 있다. 부와 불평등의 상징이 된 것이다.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된 에르메스 가방. 희소성을 앞세운 명품의 가치가 중고 시장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명품 산업의 위상 변화는 재판매 시장의 가격 하락과 프랑스의 사회적 갈등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희소성을 바탕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해 온 명품이 중고 시장에서는 공급 증가와 프리미엄 축소를 겪고, 사회적으로는 부의 양극화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비판받고 있다. 명품의 가격뿐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지탱해 온 희소성과 대중의 동경까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중고 시장에서는 명품의 희소성에 붙던 웃돈이 줄고 있다. 현지시각으로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르메스 버킨백 재판매 시장 조사에서 중고 거래업자 9명 가운데 6명은 지난 1년간 재판매 가격이 하락했다고 답했고, 5명은 수요 둔화를 경험했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에 따르면 버킨 25 모델의 재판매 가격은 올해 3분기 소매가격의 약 1.7배로, 2022년 고점 당시 약 2.6배에서 낮아졌다. 미사용 제품의 중고 가격도 2022년 고점보다 6천 달러 이상 떨어졌다. 여전히 매장 판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지만, 과거와 같은 높은 웃돈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가격 하락의 배경에는 중고 시장의 공급 확대가 있다. 온라인 재판매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소비자가 보유한 가방이 시장에 유입되는 경로가 다양해졌다.
명품 재판매 플랫폼 패션파일에 등록된 버킨백 매물은 지난 15년간 32배 늘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버킨백과 켈리백의 전 세계 판매 등록 물량이 팬데믹 이전보다 6~7배 증가하며 희소성 기반 사업 모델이 약화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이달 초 에르메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중고 시장에서 나타난 변화가 명품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우려라면, 프랑스의 폭력 시위는 명품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간극을 드러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현지시각으로 17~18일 프랑스 전역으로 번진 시위 과정에서 파리와 마르세유 등 여러 도시의 셀린느·루이뷔통·에르메스·디올·생로랑 매장이 공격받았다.
일부 시위대는 매장 유리창을 깨고 진열장을 부순 뒤 고가 제품을 가져갔다. 이틀간 피해를 본 상점은 3천 곳을 넘었으며, 도난품으로 추정되는 핸드백과 화장품 등이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빈티드는 의심스러운 상품을 삭제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했으며, 프랑스 당국도 플랫폼 운영사들과 도난품 식별 및 신고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프랑스에서 명품은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인 동시에 부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 경제부에 따르면 패션·명품 산업의 매출은 1540억 유로에 달하며, 직간접 고용 규모는 61만5600명이다.
프랑스 기업들은 세계 명품 시장 매출의 약 25%를 차지한다. 국가 경제와 고용에 기여하는 산업이지만, 그 성과를 상징하는 고가 제품은 대다수 소비자가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 인식은 엇갈린다.
세르주 카레이라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한 외신(뉴욕타임즈)에서 "프랑스는 명품과 애증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며 "세계적 영향력에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 도덕성에는 의구심을 품고, 명품 산업의 불평등한 본질을 비판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젊은층은 명품 세계에서 배제됐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브랜드에 대한 동경이 질투와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