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정직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어떤 숫자를 장부에 올리고 어떤 숫자를 빼느냐에 따라 같은 현실도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3대 메가프로젝트의 온실가스 계산도 그렇다. 투자 규모를 알리는 숫자는 넘쳐나지만, 그만큼 늘어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늠할 숫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규모를 알리는 숫자는 넘쳐난다. 반면 그만큼 늘어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늠할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이 대통령이 10월7일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 국민보고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6월29일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 AI(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에 서남권 반도체 팹 800조 원, AI 데이터센터 약 550조 원 등 막대한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서남권을 반도체 거점으로 꼽은 이유를 설명하며 "용수도 풍부하고 특히 신재생 에너지가 풍부한 곳이 바로 서남해안 일대"라고 말했다. 입지 선정의 근거로 재생에너지를 직접 꺼내 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생에너지로 메가프로젝트의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정부의 공식 배출 전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0월6일 국정감사에서 재생에너지 100GW(기가와트)를 앞당겨 달성하고 에너지 믹스를 조화롭게 짜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하겠다고 했지만, 그 결과 배출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숫자는 찾기 어렵다.
빈칸을 채운 건 민간 연구소다. 녹색전환연구소는 7월 AI 데이터센터(18.4GW)와 서남권 반도체 팹(6.3GW)이 2035년 한 해에만 온실가스 2145만 톤을 더 내보낼 것으로 추산했다. 전력 부문이 국가 감축목표 경로대로 깨끗해진다는 낙관적 가정에서 나온 숫자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는 지역의 탄소 성적표와 나란히 놓으면 실감이 난다. 같은 연구소가 10월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6개 시·군·구는 2025년 온실가스를 2093만6900톤 줄인 것으로 산정했다. 목표치의 87.2%다. 기준 연도도 산정 방식도 다르지만, 규모만 놓고 보면 전국 지자체가 1년 동안 줄였다고 적어낸 양을 메가프로젝트가 한 해 만에 다시 내뿜는 셈이다.
더 곤란한 건 반도체 팹이 내뿜을 온실가스가 애초에 이 성적표 밖에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 온실가스 통계에는 지역 안 공장과 발전소의 배출도 잡힌다. 하지만 감축목표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발전소와 산업시설 등을 뺀 '관리권한 배출량'을 기준으로 세운다. 지자체가 직접 손댈 수 없는 배출까지 떠안길 수는 없다는 취지다.
서남권보다 먼저 거대한 반도체 단지를 품게 된 용인시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용인시는 SK하이닉스 팹 4기가 들어설 반도체클러스터와 반도체 국가산단을 계획서에 적고, 국가산단 조성이 완료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감축목표는 산업을 뺀 관리권한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40% 감축'으로 잡았다.
배출량이 크게 늘 것이 뻔해도 성적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온실가스 감축은 지역의 의무가 되고, 배출은 국가 산업정책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가 이 간극을 모를 리 없다. 이 대통령은 10월7일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녹색 대전환은 우리 첨단 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또 3대 메가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녹색전환을 메가프로젝트의 선결 조건으로 못 박은 것이다.
그런데 같은 날 나온 K-GX 보도자료에는 메가프로젝트도, 데이터센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10년간 1천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에서 반도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힌 건 공정가스를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물질로 바꾸는 기술개발 정도다. 팹을 돌릴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깨끗하게 마련할지에 관한 계산이 빠져 있다.
시민사회의 요구도 결국 계산서로 수렴한다. 9월19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약 7천 명이 모여 메가프로젝트 중단을 외쳤고, 10월12일에는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산업부·기후부·과기정통부·국토부에 메가프로젝트의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 예측치를 공개하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중단을 외치는 시민사회와 속도를 내려는 정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첫걸음은 같다. 숫자를 꺼내 놓는 것이다. 계산서가 없으면 찬성과 반대는 서로 다른 추정만 들고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아직 만회할 방법은 있다. 정부는 업종별 감축 로드맵을 올해 안에 내놓을 계획을 세웠고,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다시 짜고 있다. 이 기회에 메가프로젝트에서 예상되는 배출량을 국가와 지역 가운데 어느 감축목표에 넣을지 정하고, 예측치를 공개해 외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녹색대전환이 메가프로젝트의 '필수적 전제'라는 대통령의 말도 빈말로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