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켠에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면 이제 재활용장으로 가져갈 때다. 과장이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택배 상자의 소재가 되는 골판지는 바퀴벌레가 숨고 번식하기 좋은 대표적 은신처로 꼽힌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도시 인근 지역의 곤충을 연구하는 에런 애슈브룩 조교수는 "흥미롭게도 골판지는 바퀴벌레를 강하게 끌어당긴다"며 "바퀴벌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골판지를 사육용 은신처로 활용한다. 바퀴벌레가 그 안에서 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판지 상자의 굴곡진 틈은 바퀴벌레가 숨을 공간을 제공하고, 젖은 골판지는 먹이와 수분 공급원이 될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모든 바퀴벌레가 골판지에 둥지를 트는 것은 아니다. 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다만 집 안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퀴벌레들이 골판지를 좋아한다는 점이 문제다.
바퀴벌레가 골판지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골판지는 바퀴벌레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애슈브룩 교수는 "연구실에서 사육하는 바퀴벌레를 보면 골판지를 먹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젖은 골판지에서는 음식과 수분을 동시에 얻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골판지는 냄새를 잘 흡수한다. 바퀴벌레가 남긴 페로몬 냄새도 스며들 수 있어 다른 바퀴벌레를 더욱 끌어들인다.
미국 코넬대 뉴욕주 통합해충관리프로그램에서 설치류와 건물 해충을 연구하는 맷 프라이는 골판지가 소리를 흡수한다는 특성도 언급했다.
그는 "골판지 안에 벌레가 들어가 움직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택배 상자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오랫동안 쌓아두는 습관도 문제다.
프라이는 "골판지는 사람들이 잘 살피지 않거나 잊어버리기 쉬운 장소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곳에 오랫 시간 방치되면 바퀴벌레가 눈에 띄지 않은 채 번식하고 다른 공간으로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택배 포장에 주로 사용되는 골판지는 여러 겹 사이에 굴곡과 홈이 있다. 바퀴벌레가 이 좁은 틈에 몸을 숨기고 생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결국 골판지 상자는 바퀴벌레에게 은신처와 먹이, 수분을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다.
불쾌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 알레르기와 천식 위험까지
주방 조리대 위를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모습은 불쾌할 뿐만 아니라 명백한 위생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모든 바퀴벌레가 똑같은 위험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바퀴벌레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가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종은 미국바퀴와 독일바퀴다.
미국바퀴는 몸집이 크고 적갈색을 띤다. 미국에서는 '워터버그'나 '팔메토버그'라고도 불린다. 주로 하수도와 습한 환경에 살며 따뜻한 지역이나 여름철에 자주 나타난다.
독일바퀴는 미국바퀴보다 몸집이 작으며 미국 전역에서 발견된다. 특히 주방과 욕실 등 집 안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애슈브룩 교수는 두 종 모두 "병원체를 기계적으로 옮기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바퀴벌레는 하수구나 썩은 유기물처럼 비위생적 환경을 돌아다니다가 가정으로 들어온다. 이후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으로 이동해 배설하거나 먹은 것을 토해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몸 안팎에 묻어 있던 병원체가 음식과 조리대 등으로 옮겨진다.
독일바퀴가 사람에게 질병을 직접 전파한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바퀴가 살모넬라균과 대장균, 노로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은 있다.
가정 내 바퀴벌레 문제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건강 피해는 알레르기다. 이는 특히 독일바퀴와 관련성이 크다.
프라이는 "독일바퀴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마주치는 바퀴벌레"라며 "배설물과 탈피한 외골격 등에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에게는 위험이 더욱 클 수 있다.
애슈브룩 교수는 "어린이가 바퀴벌레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나 해당 물질이 포함된 신체 일부에 노출되면 천식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성인에게서는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어린이에게는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 상자만 버리면 끝날까 : 바퀴벌레 근본 예방법
집에 바퀴벌레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지하실에 골판지를 쌓아두고도 바퀴벌레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다. 반면 하수도와 배관, 벽을 이웃과 공유하는 도시 공동주택(아파트)에서는 해충이 유입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즉, 자신이 사는 환경에 맞춰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골판지가 바퀴벌레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기적으로 살피는 일이다.
프라이는 "상자를 계속 쌓아두기만 하지 말고 보관 장소의 불을 켜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무언가 빠르게 달아나는 모습이 보인다면 해충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집 안의 갈라진 틈이나 구멍을 막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바퀴벌레의 침입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애슈브룩 교수에 따르면 성체 미국바퀴는 미국 1센트 동전 두 개를 포갠 높이 정도의 좁은 틈도 통과할 수 있다.
제품의 사용 지침에 따라 집의 출입구 주변에 예방용 살충제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어 다니는 벌레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 살충제에 접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택배 상자는 오래 쌓아두지 말고 바로 펼쳐 배출하며, 음식은 밀폐 보관하고 쓰레기는 제때 처리하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AI 생성 이미지.
집을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음식을 밀폐 보관하며 쓰레기를 제때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바퀴벌레는 부패한 물질과 음식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이미 바퀴벌레가 크게 번식한 상태라면 전문 방역업체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집에 들어온 모든 바퀴벌레가 번식하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고 해서 반드시 내부에 서식지가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어떤 종인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프라이는 "집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바퀴벌레 종류는 매우 많다"며 "숲 근처에 산다면 밤에 불빛을 따라 날아 들어오는 종도 있지만, 이런 바퀴벌레들은 집 안에서 번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되는 종인지 확인하려면 전문기관을 통해 정확하고 객관적 판정을 받는 것이 좋다.
해외 해충 예방 사례
미국에서는 거주하는 주의 랜드그랜트 대학에 사진을 보내거나 직접 표본을 가져가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 랜드그랜트 대학은 연방정부가 토지를 제공해 설립한 주립 교육기관으로, 지역 주민을 위한 농업·생활 관련 연구와 상담 업무도 담당한다.
프라이는 "집에 나타난 모든 바퀴벌레가 집 안에 정착해 번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애슈브룩 교수도 "미국바퀴나 독일바퀴처럼 심각한 해충으로 여겨지지 않는 바퀴벌레도 많다"며 "상당수는 자연환경에서 썩은 물질을 먹고 살 뿐 사람과는 아무런 관련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정에 서식하는 해충종은 분명 주의가 필요하며 가능할 때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허프포스트코리아는 미국 허프포스트와 제휴를 통해 기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번역·정리 강서원 허프포스트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