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아노펠레스 스테펜시’가 아프리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모기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든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고 있어 ‘슈퍼 모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모기를 추적할 감시예산이 세계 주요국의 지원삭감으로 가장 먼저 잘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감시 데이터 없이는 모기장 등 방역자원을 어디에 투입할지조차 결정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모기가 피를 빨고 있는 모습. ⓒ 픽사베이
6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10개 나라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에 자리 잡은 스테펜시 모기 개체군이 현재 사용되는 모든 방역화학물질에 유전적 저항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된다.
스테펜시 모기는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처음 확인된 지 10여 년 만에 서쪽으로는 가나, 남쪽으로는 케냐, 나이지리아까지 확산했다. 전문가들은 라고스·킨샤사처럼 인구 2천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대도시로도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테판시 모기는 특별하다
스테펜시 모기는 기존 아프리카 토착 모기와 다르게 건기에도 살아남고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번식한다.
빗물통이나 병뚜껑 같은 작은 고인 물에서도 유충이 자라기 때문에 상하수도가 불안정한 대도시 빈민촌이 오히려 최적의 서식지가 됐다.
이 모기들은 2012년 아프리카 지푸티에서 처음 확인된 뒤, 말라리아 퇴치를 눈앞에 뒀던 지부티의 감염자 건수를 이전의 27건에서 7만 건 이상으로 폭증시켰다.
리버풀 열대의학대학원이 주도한 최신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스테펜시 모기가 남아시아에서 이미 살충제 해독 유전자를 갖춘 채 아프리카에 유입됐고, 아프리카 지부티를 교두보 삼아 에티오피아와 케냐 수단을 거쳐 사헬지대를 따라 연간 최대 480km씩 확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보건학계에서는 아프리카 도시 인구 가운데 최대 1억2600만 명이 새롭게 말라리아를 비롯한 질병의 위험군에 편입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슈퍼모기로 불리는 스테펜시 모기의 확산이 국가 통제력이 약해진 분쟁지역인 수단, 소말리아와 겹쳐 정확한 감시자체가 불가능한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텅 빈 감시망, 자초한 재앙
예방접종을 하는 모습. ⓒ 픽사베이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슈퍼모기 문제가 부상하는 시점에 세계 각 나라의 말라리아 예산, 특히 감시예산이 가장 먼저 삭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 4월 보고서에서, 조사에 참여한 108개 국가사무소 가운데 거의 4분의 3이 국제 원조 중단으로 보건서비스 전반에 차질을 겪었다고 밝혔다.
특히 말라리아 유행국 64개국 중에서는 절반 이상이 예방·진단·치료를 포함한 말라리아 서비스에 심각한 차질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는 4억2500만 명에게 모기장을 배포할 계획도 40% 이상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짚었다. 또한 어린이 5800만 명을 위한 예방투약 사업도 30% 가까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말라리아 퇴치 지원프로그램인 '대통령 말라리아 이니셔티브(PMI)'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외원조기구(USAID) 조직을 대폭 축소하면서 관련 예산의 약 47%가 삭감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예산에는 치료제 지원뿐만 아니라 모기 감시활동 예산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라리아와 에이즈, 결핵 퇴치를 위해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출자한 국제기구 '글로벌 펀드(Global Fund to Fight AIDS, Tuberculosis and Malaria)'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글로벌펀드는 2025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재원모금회의에서 목표액 180억 달러(한화 약 25조5천억 원) 가운데 63%만 모였고 그 여파로 이미 승인됐던 2023~2025년 사업예산도 평균 11% 삭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보건기구가 2025년 12월 발표한 '2025 세계 말라리아 보고서'는 2024년 세계 말라리아 감염자가 2억8200만 명, 사망자가 61만 명으로 2023년과 비교해 각각 900만 명, 1만2천 명 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에는 2025년 벌어진 대규모 예산삭감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아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프리카 정상들이 결성한 말라리아 퇴치 협의체 ALMA가 낸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펀드 지원금이 직전보다 20%만 줄어도 2030년까지 말라리아 환자가 3300만 명, 사망자가 8만2천 명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아프리카 경제손실이 51억4천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케냐 국립의학연구소 KEMRI 소속 곤충학자 에릭 오초모 박사는 4일 뉴욕타임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말라리아 모기 감시체계 관련 예산 삭감은 스테펜시 모기의 확산을 막는데 치명적 문제로 다가온다"며 "말라리아 모기와 관련된 기초적 감시 데이터가 없으면 모기장을 어디에 먼저 쳐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