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무 지분투자는 디지털자산 기반 금융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다.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올해 5월 두나무 지분투자를 알리며 했던 이야기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하나금융그룹을 종합금융지주 가운데 ‘퍼스트 무버’로 세웠던 하나금융그룹의 1조 원대 두나무 지분 인수 발표 이후, 하나금융과 두나무의 협력은 한동안 비전 공유와 큰 틀의 방향 제시에 머물러왔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함 회장이 말한 '전략적 결정'의 무게가 조금씩 실체를 갖춰가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가상자산 퍼스트 무버' 전략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특히 함 회장과 이은형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까지 양측 최고경영진이 총출동한 비공개 간담회가 열리면서, 이 자리에서 협력의 밑그림이 한층 또렷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밑그림이 실물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도 뚜렷하다. 하나는 10월 업비트 실명계좌 계약이라는 눈앞의 문턱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국회에 머물러 있는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이라는 더 큰 벽이다. 선언의 크기만큼 실현의 문턱도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 함영주 이은형 김형년 한 자리에 모였다, 협력의 두 축은 '통합금융'과 '외환'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함 회장은 최근 열린 하나금융그룹·두나무 최고경영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단순한 비전, 방향 제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 협업’이라는 구체적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함 회장은 이 자리에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더 큰 미래를 만들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금융그룹과 두나무가 '장기 협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설정하고 있는 가장 중심 목표는 모든 자산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통합금융 서비스다. 예금과 증권, 가상자산까지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을 품으면서 재출발한 하나은행의 가장 큰 강점인 외환 경쟁력을 활용한 해외 송금·결제 영역도 두 회사가 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지점으로 꼽힌다. 이 밖에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실물자산 토큰화(RWA) 등 사업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 구체적 협력으로 가는 관문은 10월에 있다, 업비트 실명계좌 계약에 시선 집중
금융권에서는 두 회사의 협력이 구체화되는 관문으로 10월 업비트와 케이뱅크 사이 실명계좌 계약 만료를 주목하고 있다.
외화송금 서비스, 통합금융 서비스 등 협력의 구체적 안건들은 모두 업비트와 하나은행 사이의 자유로운 입출금이 전제돼야 원활히 전개되는 사안들이다. 10월 케이뱅크와 업비트의 계약 만료 이후 그 자리를 하나은행이 차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다만 현재의 '1거래소 1은행' 실명계좌 체제에서는 계약 은행 변경으로 인한 소비자 불편이 상당하다. 그동안 케이뱅크 계좌를 통해 업비트를 이용해 온 고객이 업비트에 추가로 현금을 입금하거나 가상화폐를 현금화 해 인출하기 위해서 새로운 은행의 계좌를 개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빗썸이나 코빗 등 다른 거래소와 계약한 은행이 이미 자신이 사용하는 은행이라면, 업비트에 있는 가상자산을 다른 거래소로 전송하고 주 거래소를 바꾸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업비트 입장에서는 계약 은행 변경이 상당한 사업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두나무 측에서 실명계좌 계약 은행 변경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변수는 1거래소 1은행 체제 자체가 법으로 강제되는 규제가 아니라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복수 은행이 실명계좌 계약 은행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나금융그룹과 업비트의 협력이 실명계좌와 얽히는 순간 실명계좌 제도의 근본인 '신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은행이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명계좌로 연결되는 것은 자금세탁 감시를 위한 일종의 '게이트키퍼' 역할이기도 한데, 감시 대상인 거래소와 자본·기술로 한 몸이 되는 순간 그 '신뢰'가 이해상충의 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풀리지 않은 규제 리스크,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은 언제쯤
더 큰 문제는 하나금융그룹과 두나무가 그리는 청사진의 상당수가 아직 '법이 없는' 영역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통합금융도, 블록체인 해외송금도 2024년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1단계)에 이은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정비돼야 본격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
문제는 이 2단계 입법이 계속 미뤄져왔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원래 올해 1분기 안으로 2단계 법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중동전쟁과 지방선거, 국회 원구성 지연 등을 거치며 일정이 밀렸다. 지난 3월 당정협의회에서 최종안을 논의하려던 계획도 중동 사태로 무기한 연기됐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후반기 정무위 구성 이후 처음 다시 마주 앉은 것이 7월20일 열린 당정 비공개 업무설명회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의 분수령은 9월이다. 당정은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8월17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9월 안으로 당정 통합 법안을 발의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해체됐던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도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역시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연내 입법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지니어스 액트'의 내년 시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서두르게 하는 촉매로 거론된다.
다만 정기국회 초반 논의가 밀리면 국정감사 등 일정이 겹쳐 사실상 연내 입법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그룹과 두나무에 특히 민감한 대목은 일련의 과정에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두 쟁점이다. 상반기 내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50%+1주 은행 중심 컨소시엄'(이른바 51%룰)으로 확정할지, 그리고 두나무·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을 15~20%로 제한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제시됐으며 아직 명확한 합의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자는 은행, 즉 기존 금융권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주도할 수 있느냐의 문제고, 후자는 은행-거래소 자본결합의 기준선을 긋는 사안이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한 자금세탁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AML) 규율 강화도 하반기 과제로 함께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하나금융그룹 말고도 가상자산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든 금융사들이 해당 입법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선진국들이 이미 제도를 갖춰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실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제도적으로 결론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