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면 가까운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남 함안군에서는 그 당연한 권리조차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은 15곳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함안군은 만 18세 이하 인구가 6523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함안군은 20여 년 전 마지막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문을 닫은 데 이어 4년 전부터는 공중보건의마저 자취를 감추면서 사실상 '소아과 무의촌'이 됐다.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한다. AI 이미지.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활동 중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명 이하인 지역은 70곳에 달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약 30%가 사실상 '소아과 무의촌'인 셈이다. 이 가운데 15곳은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었고, 33곳은 전문의 1명이 지역 전체 소아의료를 홀로 책임지고 있었다. 아이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의료 접근성이 달라지는 현실이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서울 강남구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11명이나 있어 이들 무의촌 70곳을 모두 합친 전문의 수(77명)를 압도한다. 이런 불균형은 단순 편재를 넘어 지방·농촌 지역에서 소아청소년과 인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어서, 비수도권 지역의 전문의 증원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드러낸다.
더구나 2018년 816명이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2022년 395명으로 30% 가까이 줄어든 데다 전공의의 73%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현재의 수도권 편중과 비수도권 의사 부족이 향후 더 악화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개개인의 사례로 보면 비극은 더욱 커진다.
함안에 거주하는 한 초등학생은 실수로 동전을 삼켰지만 소아 내시경을 시행할 병원이 없어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70㎞ 떨어진 양산부산대병원까지 이동해야 했다. ‘동전 삼킴’처럼 기도 확보와 내시경 처치가 즉시 필요한 상황에서 장거리 이동은 치료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응급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인데, 비수도권 아이들은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할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비슷한 비극은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2024년 3월경 충북 보은군에서는 33개월 된 아이가 도랑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뒤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을 회복했지만,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숨졌다. 소방과 의료진은 충청권과 수도권 병원 11곳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병상과 전문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잇따라 거절당했다.
뒤늦게 한 병원이 수용 의사를 밝혔을 때는 이미 아이가 두 번째 심정지에 빠져 이송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2023년 7월 대전에서는 뇌출혈 증세를 보인 학생이 소아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한 끝에 가까스로 수술을 받았지만 2주 만에 숨졌다. 수원에서는 코로나19에 확진된 생후 7개월 영아가 열성경련으로 응급 이송됐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들이 수용을 거부하면서 끝내 사망했다.
더 과거로 돌아가 통계를 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외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결국 숨진 어린이는 196명에 달한다. 상당수는 응급실에는 도착했지만 제때 수술과 치료를 담당할 의료진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의료 공백은 지역 소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아플 때 곧바로 갈 수 있는 소아과가 있는가"가 주거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전문의 부족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의료원이나 보건소 소속 전문의를 순회 진료에 투입하거나 주 1회 출장 진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상시 진료와 응급 대응이 가능한 소아의료 체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마다 지적되는 이 같은 '비수도권 필수의료 붕괴'에 대해 의료계는 전문의 부족과 특정 진료과 기피의 원인을 의사 숫자가 아니라 낮은 보상체계와 열악한 의료 인프라,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부담 등 구조적 문제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사 증원만으로 비수도권과 필수의료 현장에 인력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료계 주장에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해도 '의사 총원 부족'은 엄연한 현실임에 분명하다. 2026년 5월 공개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우리나라를 두고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OECD 평균보다 적은 반면, 의사와 의료자원은 수도권에 집중되고 농어촌과 중소도시는 필수의료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이중적 불균형 상태"로 규정했다. 이는 의료계가 강조하는 '배치의 문제'와 별개로, 전체 의사 공급 부족과 지역·필수의료 편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일부 비수도권 병원은 필수 진료과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권 못지않은 연봉과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고도 끝내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높은 업무 강도와 의료사고 위험, 정주 여건 등 구조적 문제가 금전적 보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현재의 의사 인력 총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의사 증원 논의가 나올 때마다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논리를 반복하며 의사 총원 부족 문제를 상대적으로 무시해 왔다. 하지만 함안의 아이들이 병원을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고, 보은과 대전, 수원의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생명을 잃은 현실은 구조만의 문제도, 숫자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사가 부족한 데다 그마저 수도권으로 집중된 결과가 지금의 의료 공백을 낳은 주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