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지주사 인적분할을 기점으로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부사장의 홀로서기에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그룹 경영의 방점은 여전히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본업, 방산과 조선·해양, 에너지 사업을 향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회장이 2026년 핵심 경영방침으로 글로벌 방산 역량 강화와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꼽으면서 장기적으로 뚝심 있는 투자가 요구되는 김동관 부회장의 사업 영역에 전사적 역량이 최우선적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김동관 부회장은 미국 본토에서 3조 원 규모의 수주로 단순한 상업용 조선소를 넘어 미국 국가안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핵심 파트너로 체급을 높였다.
김동관 부회장의 시선은 진입 장벽이 높은 미국 해군의 ‘전투함’ 등 함정으로 향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앞세워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와 연계한 지원 선박을 넘어 해군 함정 건조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이 2024년 11월20일 경기 시흥시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에서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한화그룹은 시흥R&D캠퍼스를 글로벌 해양방산 초격차 기술력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한화
◆ 인적분할과 함께 쏟아지는 삼남을 향한 기대, 진짜 무게추는 장남에 있다
7월20일 한화와 재계에 따르면 8월1일을 분할기일로 신설회사인 지주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 출범하면서 김동선 한화그룹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영역량을 입증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시선이 몰린다.
한화그룹이 올해 1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신설 지주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설립 작업은 마지막 능선을 넘겼다. 앞서 15일 한화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를 인적분할하는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을 통과하면서다.
인적분할이 완료되면 한화비전, 한화모멘텀, 한화세미텍, 한화로보틱스 등 테크 분야 계열사와 한화 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아워홈 등 라이프 분야 계열사는 신설법인 산하로 편입된다.
이번 인적분할은 그동안 방산, 조선·해양, 에너지 등 한화그룹의 본업을 책임진 김동관 부회장, 금융 분야를 이끌고 있는 김동원 사장과 비교해 다소 존재감이 약했던 김동선 부사장의 향후 행보를 향한 기대감을 키웠던 것이 사실이다. 김동선 부사장은 기존 한화 건설부문의 해외사업본부장 자리도 내려놓고 직접 미래비전총괄을 맡고 있는 신설법인 아래 계열사들에 더 공을 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화그룹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세 아들의 아버지 김승연 회장의 눈은 장남이자 승계 1순위인 김동관 부회장과 그가 이끌고 있는 ‘본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승연 회장의 2026년 경영 방침에서 읽을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한화그룹 신년사에서 김동관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방산 분야를 올해 키워드로 수차례 언급했다.
김승연 회장은 신년사에서 글로벌 사업의 경쟁 심화를 언급하며 한화그룹의 모든 사업영역에서 미래 선도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AI 방산’을 핵심 사업 분야의 첫 손가락에 꼽았다.
이어 올해 한미 조선 사업 분야 협력, 이른바 마스가를 책임지는 실행의 원년이 돼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승연 회장은 “마스가는 미국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온전히 한화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바란다”며 “한미 관계의 린치핀(수레 등의 바쿠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즉 핵심 동반자로서 군함, 핵추진잠수함 건조 등을 통해 양국 조선업 협력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신년사 말미에는 다시 “한화는 꿈꾸던 미래를 현재로 만들어 우주에 진출했고 글로벌 방산 키 플레이어가 됐다”고 평가하며 ‘민간 우주 시대를 열고 글로벌 방산의 핵심’으로 거듭난 김동관 부회장의 성과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 필리조선소 마스가를 향한 진격, 김동관 미국 해군 함정으로 사업영역 넓힌다
한화그룹은 인적분할을 통해 각 사업군 특성과 환경에 적합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의 방산, 조선·해양, 에너지 분야에도 더욱 힘이 실리는 셈이다. 사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선 부사장의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에 속하는 테크 및 라이프 부문이 유연하고 민첩한 성장 전략이 필요한 것과 비교해 김동관 부회장의 주력 사업 영역은 장기적 성장 전략과 투자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로 분류된다.
한화그룹 필리조선소의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연계 지원 선박 건조 사업 수주 역시 김동관 부회장이 ‘길게 보고’ 투자한 조선소 인수가 빛을 발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한화필리조선소는 19일 미국 해사청과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MRIV) 건조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MRIV는 미사일 비행시험 때 궤적 추적, 원격 측정자료 수집, 통신 및 시험결과 분석을 지원하는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 선박이다. 이 선박은 미국의 차세대 공중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 돔’ 구축에 필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골든 디펜더’로 불린다.
한화필리조선소의 MRIV 인도 시점은 2030년부터로 잡혀 있다. 미국 해양전문매체 마리타임이그제큐티브에 따르면 한화필리조선소가 MRIV 2척을 건조하는 이번 사업 규모는 20억 달러(약 3조 원)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화그룹이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들여 2024년 12월 인수를 마친 한화필리조선소가 미국 국가안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관 부회장의 선제적 투자가 주효해 한화필리조선소의 위상이 민간 조선소에서 안보 관련 선박 건조 조선소로 높아진 것이다. 한화필리조선소 지분은 한화시스템이 60%, 한화오션이 40%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필리조선소는 이번 수주를 포함해 23척, 68억 달러의 수주잔고를 보유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업계에서는 한화필리조선소가 생산역량을 끌어올려 연간 선박 인도량이 한화그룹 인수 이전 연간 1척 수준에서 2030년 7척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경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20일 조선업종 분석보고서에서 “한화필리조선소 신규수주는 마스가 투자 과실을 증명한 것”이라며 “한화필리조선소는 2030년까지 현재 4도크(선박 건조시설)의 생산성을 끌어 올리고 안벽(접안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5도크도 본래 목적으로 가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미국 해군의 함정 건조 시점도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승연 회장이 미국과 조선업 협력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핵심으로 꼽은 ‘군함, 핵추진잠수함 건조’ 실행으로 김동관 부회장이 한발 더 나아가게 되는 셈이다.
한화필리조선소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 한화디펜스USA와 함께 미국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설계 사업에 참여하는 등 미 해군 함정 건조사업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군수지원함은 전투함 등 함대에 연료와 탄약, 물자 등을 보급하는 지원 선박이다.
한화필리조선소는 향후 함정 건조를 위한 라이센스(면허)를 확보하고 미국 전투함 시장으로 방산 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7월19일 수주산업 보고서에서 한화필리조선소의 수주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해양 지배력 회복 기조에 한화필리조선소가 확실히 편입됐고 마스가와 관련해 한화그룹이 가장 앞서 있음을 확인했다”며 “한화필리조선소는 향후 시설보안허가(FCL·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자격) 획득 뒤 미 해군 함정 관련 추가 수주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바라봤다.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최고경영자(CEO)는 MRIV 건조계약과 관련해 “이번 사업은 검증된 설계, 숙련된 인력, 그리고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이 결합할 때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고객이 기대하는 품질과 신뢰성, 그리고 책임감을 바탕으로 이 선박들을 성공적으로 인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