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참의원이 여성의 왕위 계승 가능성을 배제한 채 '남계 남성' 승계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왕실전범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정치적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일본 국민여론과 어긋난 결정이라는 비판이 확산되는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내각의 지지율은 개정안 통과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권 출범 뒤 최저치인 41%까지 떨어졌다.
이번 사태는 일본 왕실이 안고 있는 '왕족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여성 배제 논란과 정치적 불신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나루히토 일왕(왼쪽부터)과 마사코 왕비, 아이코 공주. ⓒ 교도통신=연합뉴스
20일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을 종합하면 일본 국회는 17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옛 왕족 가문의 남계 남성을 왕실로 들이고, 그 양자에게서 태어난 남자아이에게 왕위 계승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의 왕실전범 개정안을 가결했다.
나루히토 현 일왕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번 왕실전범 개정 논의에서 애초에 배제됐고, 이는 사실상 '여성 일왕'의 가능성을 봉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일본 국민 다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이 2026년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3%가 아이코 공주의 즉위, 즉 여왕 즉위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일본 야당도 왕실전범 개정안을 두고 "시대착오적 개정안이다"며 "왕실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아이코 공주에게 왕위 계승권을 부여하면 된다"고 반발했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도 '상징적 일왕제의 근간에 상처를 입혔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태평양 전쟁 뒤 80년 걸쳐 자라온 국민과 상징적 일왕의 유대를 무시하는 너무나 많은 결함을 안은 난폭한 제도변경이다"고 비판했다.
여성 일왕을 배제하는 왕실전범 개정의 정치적 원인
이런 결과는 일본 왕족수 감소라는 실질적 문제에서 시작됐다. 현재 일본의 남성 왕족은 3명에 불과해 왕실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 국회는 왕족 확대 방안을 모색해왔다.
기존 일본 왕실전범(1947년 제정)은 여성 왕족이 결혼하면 왕족 신분을 잃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공주들이 혼인할 때마다 왕실의 구성원 수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애초 일본 국회 양원 의장단이 마련한 합의안에는 여성 왕족이 결혼 뒤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는 방안과 옛 일본 왕족 남계 남성을 양자로 들이는 방안이 함께 담겼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자민당 안의 보수 정치권에서 '여성 일왕' 자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논의 방향이 바뀌었다.
다카이치 내각은 6월30일 국회에서 제출한 정부 왕실개정안에서 양자로 들인 옛 왕족남성의 '아들'에게 왕위계승 자격을 명시적으로 부여했다. 이는 여성의 왕위 계승 가능성 논의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2003년, 2009년, 2016년, 2024년 네 차례에 걸쳐 남계 남성 승계 원칙을 여성차별철폐조약 이념에 반한다며 개정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왕위 계승 자격은 인권이나 여성 차별 문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역사 속 여왕은 없었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 AFP통신=연합뉴스
일본 역사 속에서 여왕이 없지는 않았다. 역대 일왕 가운데 여성 일왕은 약 8명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부계 혈통을 이어받아 즉위했지만 여왕의 자손이 다시 왕위를 잇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계 남성만 왕위를 승계한다'는 원칙은 1947년 태평양 전쟁 뒤 왕실제도 개편시점부터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부터 여성 왕족은 결혼과 동시에 왕족 신분을 잃도록 규정됐다. 즉 일본 역사 전체를 통들어 여성이 왕위를 이은 전례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태평양 전쟁 뒤 현대 왕실전범 체제 아래에서는 제도적으로 배제돼 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야당과 여론에서는 '남계 남성 왕위 승계'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자의적 원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 지지율 하락
여론과 어긋난 일본 왕실전범 개정안 통과는 다카이치 일본정부의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마이니치 신문이 7월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한 달 전(6월20~21일) 조사 당시 51%에서 10%포인트 급락한 41%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2025년 10월 정권 출범 뒤 최저치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다카이치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응답이 44%로 지지한다는 응답보다 처음으로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지지통신도 20일 발표한 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이 49%로 정권 출범 뒤 처음으로 50% 이하로 내려갔다고 보도했다.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불과 2025년 11월가지만해도 75%에 달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는데, 이와 비교하면 급격한 반전으로 읽힌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지지율 하락의 핵심원인으로 '민의를 무시한 왕실전범 개정'을 지목하고 있다. 여성 일왕 배제를 두고 일어나는 일본 여론의 반발은 앞으로도 다카이치 내각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