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를 끼고 국세청과 소송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악의적으로" 행동했으며, 합의라고 내세운 조건도 불법이자 위헌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을 상대로 한 모든 세무조사와 세법 집행을 중단하는 특혜 조치를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족들이 7월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불꽃놀이를 관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캐슬린 윌리엄스 연방법원 판사는 트럼프가 소송을 취하한 지 수개월 만인 13일(현지시각) 이례적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측 변호사들을 공식 징계 절차에 회부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법적 절차에서 자신이 정부와 맺은 거래를 이 사건의 '정식 합의'라고 표현하지 못하도록 했다.
윌리엄스 판사는 트럼프가 "납세자 자금에 접근하고 세무조사와 각종 조사에서 면제받는 특별한 보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소송을 부적절하게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각주를 통해 트럼프를 상대로 이미 시작된 세무조사와 세법 집행을 "영구히 금지한" 법무부의 5월19일 명령 자체가 적법한지는 이번 재판의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법무부 대변인은 이메일을 통해 판사의 이 같은 설명은 해당 명령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한 토드 블랜치의 인준 여부를 심사하는 15일 상원 청문회에서도 5월19일 명령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출신인 블랜치는 법무장관 대행을 맡은 뒤 현재는 폐기된 18억 달러(한화 약 2조6776억 원) 규모의 '반무기화 기금'과 트럼프 개인에게 세금상 혜택을 주는 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반무기화 기금은 바이든 정부 시절 법무부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조성됐다.
민주당은 판사의 강도 높은 질책만으로도 블랜치를 인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앞서 트럼프의 비자금 조성과 세금 특혜를 폐지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도 반무기화 기금과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합의한 사건을 두고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13일 기자들에게 "반무기화 기금뿐 아니라 세무조사 문제에 관한 질문에 블랜치 장관 후보자가 어떻게 답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지지한 켄 팩스턴에게 패한 코닌 의원은 블랜치 인준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공화당 의원 가운데 한 명이다.
상원 법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딕 더빈 상원의원은 청문회를 하루 앞둔 14일 블랜치와 만났다. 더빈 의원에 따르면 블랜치는 자신은 트럼프가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자신은 윌리엄스 판사의 표적 공격을 받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더빈 의원은 블랜치가 트럼프 가족이나 가족 기업을 상대로 향후 새롭게 시작될 세무조사까지 면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내세워 5월19일 거래를 옹호했다고 전했다. 해당 명령은 블랜치가 명령을 내린 날짜보다 앞서 제출된 세금 신고서에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빈 의원은 "블랜치는 '앞으로의 조사까지 막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그것이 그의 방어 논리였지만, 내가 보기에는 변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트럼프의 소득세 신고서를 공개했는지를 둘러싼 문제 때문에 트럼프 가족이 왜 세법 적용에서 면제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임기 당시 국세청 계약직 직원이 자신의 세금 정보를 뉴욕타임스에 유출했다며 올해 1월 국세청을 상대로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878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윌리엄스 판사는 대통령이 소송의 원고인 동시에 피고인 정부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후 블랜치는 사건을 기각할지를 다루는 심리를 불과 며칠 앞두고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어린이를 위한 과세이연 투자계좌인 '트럼프 계좌' 출범 행사에 초청된 어린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게 걸린 금액도 막대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확보한 세무 자료를 토대로, 트럼프의 의심스러운 세금 공제 문제로 10년째 이어져 온 세무조사에서 그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면 최대 1억 달러(한화 약 1487억 원)를 물어야 할 수 있다고 2020년 보도했다.
백악관은 합의 가운데 국세청 관련 내용에 대한 질문을 법무부로 넘겼다. 법무부는 트럼프와 행정부가 서로 짜고 쳤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법무부 대변인은 "이 소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법 위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인정된 가족 여러 명과 함께 제기한 것"이라며 "원고들이 정부로부터 받지 못한 구제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분쟁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들은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현재는 폐지된 반무기화 기금에서도 돈을 받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1월6일 의사당 폭동 참가자들에게 현금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반무기화 기금이 만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랜치는 기금 조성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주어진 세무조사 면제 혜택은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의원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반무기화 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문을 적게 했다.
별도의 소송에서 한 연방 판사는 정부의 반무기화 기금 설립은 막았지만, 국세청 관련 거래까지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윌리엄스 판사는 이 국세청 거래가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인사들이 "특정 납세자의 납세 의무와 관련해 국세청 공무원이나 직원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세무조사나 다른 조사를 실시하거나 종료하도록 요청하는 행위"를 금지한 연방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법으로 정해진 급여 외에는 정부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받을 수 없도록 한 미국 헌법의 국내 보수 조항에도 어긋날 수 있다고 짚었다.
론 와이든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럼프에게 주어진 세무조사 면제 혜택을 "부패한 자기 특혜의 외설적 행위"라고 규정하며 블랜치의 법무장관 지명을 부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와이든 의원은 "트럼프와 가족, 사업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는 평범한 미국인들과는 다른 규칙을 적용받기 위해 연방정부와 납세자의 돈을 계속 이용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