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구점 가판대를 둘러보면 유독 눈에 띄는 장난감이 있다. 손으로 쥐었다 놓으면 천천히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일명 '말랑이'가 그 주인공이다.
실제 관심을 뒷받침하듯이 온라인 상에서 관심도 뜨겁다.
장난감들을 들고 있는 직장인들. AI 이미지.
지난 7일 구글 트렌드 기준 '말랑이' 검색량은 최고치인 100을 기록했고 각종 SNS에도 말랑이로 검색하면 게시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주요 소비층이 어린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직장인과 성인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말이 많다.
말랑이는 폼이나 실리콘 소재로 제작된 장난감이다. 손으로 꽉 쥐면 형태가 변했다가 천천히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감자빵, 만두, 치즈빵 같은 음식 모양부터 오리, 고양이, 강아지, 카피바라 등 귀여운 동물과 캐릭터 형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어렵게 설명하면 촉감 완구지만, 쉽게 말해 '주무를 수 있는 스펀지'에 가깝다. 손끝에 전해지는 독특한 촉감과 복원 과정이 이용자들에게 묘한 만족감을 준다.
말랑이(왼쪽), 왁뿌볼(가운데), 키캡. ⓒ인스타그램
말랑이만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단단한 외피를 깨뜨릴 때 발생하는 소리를 즐기는 공 모양 완구인 ‘왁뿌볼’, 키보드의 일부 키를 분리해 반복적으로 누르거나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든 ‘키캡’ 역시 최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제품처럼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피젯 토이(Fidget Toy)'라는 점이다.
피젯(Fidget)은 볼펜 뒷부분을 반복해서 딸깍거리거나,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는 등 안절부절못하며 나타나는 작은 신체 움직임을 의미한다. 피젯 토이는 이러한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장난감으로 손안에서 계속 주무를 수 있는 스트레스볼이나 반복적으로 회전시키는 피젯 스피너가 대표적인 사례다. 말랑이와 왁뿌볼, 키캡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같은 현상은 현대 직장인들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트레스 인지율은 40~49세가 35.1%로 가장 높았고, 30~39세가 34.7%, 19~29세가 30.3%로 뒤를 이었다.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직장생활(25.7%)과 경제적 문제(25.0%)가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실제 이용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온라인 후기에는 "누르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왁뿌볼을 부수는 소리가 중독적이다"와 같은 평가가 넘쳐난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말랑이와 왁뿌볼, 키캡 같은 피젯 토이가 성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배경에는 높은 스트레스 수준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린이들의 놀이용 장난감으로 여겨졌던 제품들이 이제는 지친 직장인들의 '심리적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말랑이와 왁뿌볼, 키캡의 유행은 단순한 장난감 트렌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손끝의 촉감과 소리, 반복적인 움직임에서 위안을 찾는 성인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대인들의 스트레스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아이들의 놀이 도구였던 장난감이 이제는 어른들의 불안과 피로를 달래는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씁쓸한 사실은 이러한 작은 도피처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뉴욕 아동마음연구소의 임상심리학자 데이비드 앤더슨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피젯 토이가 일종의 '회피 기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시적 위안에만 의존할 경우 불안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체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키캡을 반복적으로 누르거나 두드리는 행동은 손가락과 손목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엄지손가락 사용이 많아질 경우 엄지 밑부분 힘줄에 염증이 생기는 건초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발생하는 증상과 유사한데, 해외에서는 이를 '피젯 핑거(Fidget Finger)' 통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률이 높고 키보드를 치는 일이 많은 직장인이 키캡까지 자주 사용하면 피젯 핑거 통증에 더욱 취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