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침대에 누운 아이의 손에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내일 아침 등교 전쟁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부모는 망설인다. 빼앗자니 아이가 폭발할 것 같고, 두자니 새벽까지 잠들지 못할 게 뻔하다.
지난 5월22일 방영된 KBS '추적60분'의 '모두가 자식의 폰과 싸우고 있다' 편은 이 익숙한 풍경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조명했다. 당시 방송에 출연해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16년째 사춘기 학생 전문 교육기관 '센터큐'를 운영해온 허지원 대표다.
허지원 대표는 16년째 사춘기 학생 전문 교육기관 '센터큐'를 운영해왔다. ⓒ세이코리아
그가 최근 신간 <세상에 나쁜 사춘기는 없다>를 출간하며 부모들에게 도발적 메시지를 던졌다. "공감과 인내, 포용으로 사춘기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28일 허 대표를 만나 사춘기 훈육의 본질을 들어봤다.
허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때 전교 꼴찌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그는 스스로 구축한 시스템 덕분에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이 경험으로 2010년 센터큐를 설립한 후 게임중독, 등교 거부, 자해 협박 등으로 무너진 아이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등 수많은 반전을 이뤄냈다. 그는 "아이를 바꾸는 것은 더 많은 사랑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구조(시스템)"라고 단언한다.
실제 데이터도 부모의 위기를 증명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행복도가 가장 낮고 우울감이 가장 높은 집단은 '초등 고학년~중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의존도로 인해 상황이 더 가혹하다.
허 대표는 "사춘기 아이의 뇌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만 활성화되고 이성을 맡는 전두엽은 발달 중인 불균형 상태"라며, "여기에 스마트폰이 24시간 도파민을 쏟아붓고 있어 부모 세대의 사춘기와는 양상 자체가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기존의 '공감과 인내'는 왜 한계에 부딪힐까. 허 대표는 어설픈 공감이 오히려 '화내면 다 되는구나'라는 잘못된 학습의 빌미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의 지론은 지금 사춘기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허 대표가 책을 통해 제시하는 해법은 16년간 누적된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립한 '황금률 시스템'이다. 이는 ① 부모에 대한 예의와 규칙 준수, ② 일상생활 관리, ③ 자기계발 시간의 누적이라는 훈육의 3원칙으로 구성돼 있다.
예의가 전제돼야 대화가 열리고, 생활이 잡혀야 학습이 가능하며, 작은 성공이 쌓여야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단,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부모의 일관성'이 필수다. 허 대표는 "부모가 지쳐서 쉽게 넘어가 버리면 아이의 뇌는 '이번만 버티면 된다'는 요령을 가장 먼저 학습한다"며 "부모가 먼저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이 황금률을 적용해 기적 같은 변화를 이뤄낸 사례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엄마에게 욕설을 퍼붓던 아이가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고, 자해 협박을 무기로 부모를 흔들던 아이가 통제권을 내려놓고, 게임을 끄면 칼을 들던 아이가 스스로 규칙을 지키기 시작한 사례들이다.
책 제목처럼 허 대표는 "세상에 나쁜 사춘기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사춘기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 뿐이며, 지금의 고통은 아이의 인격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부모의 낡은 훈육 방식이 아이의 확장된 세계와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처음 부모가 된 당신이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며, 방법만 바로잡는다면 아이는 반드시 변한다"고 묵직한 위로를 전했다.
출간 전 교보문고 북펀딩에서 목표 금액의 1000%를 돌파하며 기대를 모은 <세상에 나쁜 사춘기는 없다>는 29일부터 전국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