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234',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떠난다는 뜻으로 노인들이 즐겨쓰는 말이다. 노후의 가장 큰 바람은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카네이션이 거리를 가득 메운 8일 어버이날, 대한민국의 노후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누군가는 실버타운에서 안락한 노년을 설계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치매 돌봄의 늪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100만 치매 환자 시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어버이날인 5월8일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열린 어버이날 잔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고급 실버타운의 월 생활비는 간병비를 제외하고도 500만 원을 달한다. 대형 병원과 인접한 입지, 맞춤형 식단, 수영장과 골프 연습장을 갖춘 이곳은 부유층 노인들에게 꿈의 노후로 통한다.
실버타운의 문턱을 넘지 못한 서민 가정은 부모의 치매 앞에서 무너진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 비율은 9.3%로 나타났다. 노인 10명 가운데 1명가량이 치매환자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치매 환자 수가 2044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설·병원을 이용하는 치매 환자의 경우 1인당 연간 관리비가 3천만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월 400만~5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실버타운 입주 비용과 맞먹는 금액이 생존을 위한 돌봄에 고스란히 투입되는 셈이다. 가계 경제는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치매 환자의 배회와 폭언, 밤낮이 뒤바뀌는 '석양 증후군'은 보호자들을 사실상 24시간 돌봄에 묶인다. 장기간 이어지는 '독박 돌봄' 속에서 가족들은 우울감과 극심한 번아웃(정신적 소진)을 겪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간병 살인 같은 비극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 모습. AI 합성 이미지.
정부는 2026년부터 시행되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통해 독박 돌봄의 고리를 끊겠다고 공언했다. '가족 휴가제'를 연간 20일로 확대하고, 치매 안심 병원을 확충해 증상이 심한 치매 환자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가 지원 확대에도 보호자들은 독박 돌봄 현실 속에 놓여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동 심리 증상이 심한 치매 중증 환자는 입소 가능한 시설을 찾기 어려운 데다, 장기간 이어지는 간병 부담을 가족 휴가제만으로 감당하기엔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가족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순간, 전국 6000여 곳의 장기요양기관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설 입소를 가정 돌봄의 포기로 받아들이며 심리적 부채감을 느낀다.
특히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취약하다. 위급 상황이 발생해도 곁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데다, 치매 증상이 악화돼도 이상 징후를 제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거노인의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한 기술적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독거노인과 치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돌봄 로봇과 AI 스피커 보급에 나서고 있다. 말벗이 되어주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거나 응급 상황을 감지하는 기능 등을 통해 돌봄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군가에게 노후는 안락한 삶의 연장인 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 전체의 삶을 무너뜨리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아래, 우리는 지금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