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이끄는 우리은행의 이사회는 독립성과 성별 다양성 측면에서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성별 다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데 이어 최근 소비자 보호 기능까지 강화하면서 시스템적으로는 사실상 '만점'에 가까운 진용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화려한 시스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대목도 눈에 띈다. 사외이사들의 전문 분야가 이른바 '전통 금융'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어, 갈수록 중요해지는 비재무적 리스크 대응에는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시스템과 성별다양성 측면에서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정진완 우리은행장. ⓒ허프포스트코리아
◆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 독립성과 성별 다양성은 '만점' 수준
우리은행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했다. 최근 금융당국의 금융소비자보호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발맞춰 이사회의 기능을 한층 강화한 셈이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시스템적 측면에서 이미 모범생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보상위원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내부통제위원회에 이어 신설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까지 다양한 소위원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상임감사위원이 포함된 감사위원회를 제외하면 모든 소위원회가 100% 사외이사로만 구성돼 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 역시 전체 8명 가운데 6명으로 75%에 이른다. 이사회의 독립된 한 축인 상임감사위원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정진완 행장을 제외한 전원이 독립적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시스템적으로 매우 높게 보장되고 있는 셈이다.
성별 다양성도 시중은행 최고 수준이다.
우리은행 사외이사 6명 가운데 여성은 3명이다. 3:3으로 완벽하게 성비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여성 사외이사의 비율이 KB국민은행(40%), 신한은행(16.7%), 하나은행(33.3%)이라는 것을 살피면,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단순히 '구색 맞추기'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 금융 전문가로만 채워진 이사회, 비재무적 위기 대응력은 '물음표'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 이면에는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이사회의 전문성 편중 문제다.
우리은행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통 금융 전문가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은행의 사외이사진은 윤수영 전 키움증권 부사장, 안숙찬 덕성여대 회계학 교수, 신요환 전 신영증권 대표이사, 박원상 한국투자증권 고문, 이경희 전 전국은행연합회 상무이사, 최윤정 연세대학교 경제학 교수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금융, 경제, 재무 분야의 전문가들로만 사외이사진이 꾸려진 셈이다.
이사회의 전문성 역량을 나타내는 2025년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의 BSM(이사회 역량평가표)을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필수 역량 분야에서 사외이사 6명 가운데 안숙찬 이사를 제외한 5명의 필수 역량이 모두 '금융/경영/경제' 분야에 쏠려 있다. 안숙찬 이사의 필수역량 역시 재무/회계 분야로 큰 틀에서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기도 하다.
금융회사 이사회의 핵심 역량 가운데 자본시장과 재무적 효율성 등이 매우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현대 은행이 직면한 디지털 전환(DT), 정보보안, ESG, 법률 리스크 등 비재무적 위기 상황에서는 다각도의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 모호한 전문성 슬롯,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감
우리은행은 BSM의 추가 역량 부문에서 윤수영 이사에 디지털·IT 역량을, 이경희 이사에 소비자 보호 역량을 표기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 윤 이사의 추천 사유를 두고 "경제학 석사로서 경제분야에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고, 키움자산운용 대표이사, 키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한 금융시장 분야 전문가"라고 설명하고 있다. IT나 디지털 전문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윤 이사가 키움증권에서 맡았던 업무들이 디지털 분야 전문성 판단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윤 이사는 2019년 다우키움그룹의 제3인터넷전문은행 도전 당시 태스크포스(TF)를 이끈 경험을 지니고 있다.
다만 윤 이사가 서울대학교 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키움자산운용 대표, 키움증권 부사장 등 전형적 금융인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디지털 역량과 별개로 IT 전문가로서 관련 전문성을 책임지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설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경희 이사 역시 은행연합회 상무 시절 소비자보호 관련 업무를 수행한 경험은 있지만, 장기간 소비자 분야를 연구해 온 전공 교수 등과 비교하면 소비자 보호 분야의 학문적·전문가로서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우리은행은 이 이사의 후보 추천 사유에서도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전략기획, 준법, 소비자보호, 디지털/IT 등 여러 분야에서 오랜기간 금융관련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금융전문가"라며 소비자 보호 분야의 전문가보다 전통 금융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경쟁 은행들은 사외이사 구성에서부터 비재무적 분야의 명확한 '슬롯'을 마련해 두고 있다.
하나은행은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 교수를 통해 소비자 전문가 자리를 채웠고, KB국민은행은 문수복 전 카이스트 사이버보안센터장과 이정숙 변호사를 통해 IT·보안 및 법률가 슬롯을 확보했다. 신한은행도 채은미 고려대 물리학 교수와 윤준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선임해 IT 전문가와 법률가 슬롯을 확고히 했다.
우리은행의 전문성 편중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일부 지점에서 방향성이 엇갈릴 소지가 있기도 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4년 3월 발효된 거버넌스 정책을 통해 이사회에 5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갖춘 사이버 보안 비상임이사가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또한 ECB의 적격성 가이드(Guide to fit and proper assessments)에 따르면 IT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금융 지식이 부족할 경우 금융 교육을 전제로 전문성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반대(금융 전문가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할 경우)는 규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기업금융국 출신의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브로크 로마넥 역시 글로벌 지배구조 전문 매체 기고를 통해 "SEC는 기후 및 사이버보안 등과 관련된 분야의 경력을 밝힌 이사들에게 더욱 자세한 정보를 요구할 것"이라며 "특정 이사가 해당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인지 아니면 단지 제한적인 경험만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