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오랜 우방이었던 이탈리아가 국방협정 중단을 선언했다. 폴란드 의회에서는 이스라엘 국기에 나치의 상징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려 넣은 깃발이 등장했고, 유럽연합(EU) 시민 100만 명이 이스라엘과 협력을 끊어야 한다는 청원에 서명했다.
홀로코스트 기념일 연설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연합뉴스
15일 AFP통신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전쟁을 비롯한 현재 중동상황을 고려해 이스라엘과 국방협정 자동갱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발포한 사건이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와 이스라엘은 2006년부터 군사장비 교환과 기술연구 협력, 군사훈련 공조를 뼈대로하는 국방협정을 맺어 5년 주기로 자동 연장해왔다. 멜로니 총리의 이번 결정으로 20여 년만에 국방협정이 처음으로 갱신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극우성향 정권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유럽 내에 그만큼 반이스라엘 여론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멜로니 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 중에 하나였다"며 서방 국가 안에서 이스라엘 지지전선이 흔들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바라봤다.
국제 외교 분석 전문매체 '모던 디플로머시'는 최근 분석에서 "이스라엘의 전통적 동맹조차 정치·외교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개 지지를 자제하거나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고 짚었다.
폴란드 의회에서는 더욱 충격적 장면이 연출됐다.
극우정당 '콘페데라치아' 소속 콘라트 베르코비치 의원은 같은 날 이스라엘 국기의 '다윗의 별' 자리에 나치문양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십자)를 그려넣은 종이 깃발을 의회 연단에서 펼쳐보였다.
영국에 본사를 둔 아랍어 일간지 아샤르크 알 아우사트에 따르면 베르코비치 의원은 의회 발언에서 "이스라엘은 우리 눈앞에서 극도로 잔인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자행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새로운 '제3제국'(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다"고 말했다.
베르코비치 의원은 이스라엘군이 중동에서 전쟁범죄로 여겨지는 백린탄(사람 몸에 불을 붙이고 꺼지지 않는 효과를 지닌 폭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당 무기로 인해 수만 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베르코비치 의원의 행동은 큰 논란이 됐다. 폴란드는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 권력을 동원해 유대인 등 약 600만 명을 집단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한 곳이다.
이에 유럽에서 오랫동안 이스라엘 비판을 억제해왔던 '홀로코스트 원죄의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폴란드뿐 아니라 유럽 시민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부정적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이스라엘의 협력을 규정하는 협정을 전면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시민청원이 3개월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
'100만 명'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갖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7개 이상의 회원국에서 유효서명 100만 명을 넘어서면 해당 사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할 법적 의무를 진다.
벨기에 매체 브뤼셀타임스는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유럽시민의 발의(ECI)'라고 이름 붙여진 해당 시민 청원에 14일(현지시각) 기준으로 100만7천 명이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 청원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상으로 집단학살과 인권침해를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올해 1월부터 시작됐다.
이탈리아의 협정중단과 폴란드 의회의 나치문양 시위, 100만 유럽인의 서명이 보여주는 일련의 흐름은 이스라엘이 유럽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피해자'로서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전쟁범죄를 일으키는 '가해자'로 비판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