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대부분 주식회사들의 정기주주총회가 마무리되면서 재계 전반에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역할에 관한 시장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KB국민은행은 비상장사지만 국내 최대 금융지주회사인 KB금융지주의 가장 중요한 핵심 계열사이자 순이익 기준 국내 1위의 '리딩뱅크'로서 국민들의 금융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 상장회사보다도 오히려 더욱 투명한 지배구조가 요구되는 이유다.
KB국민은행은 국내 4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보안 전문가'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사진은 이환주 KB국민은행장. ⓒ허프포스트코리아
◆ 4대 은행 중 유일한 '보안전문가' 사외이사, 사이버보안 전문성 확보
KB국민은행의 사외이사 구성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4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가운데 유일하게 '보안전문가'를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디지털·ICT 전문가로서 채은미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지만 채 교수는 양자 컴퓨팅과 양자 시뮬레이션 등 양자 연구분야의 권위자라는 점에서 보안 전문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KB국민은행 이사회 보안 분야의 주인공은 문수복 이사다.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인 문 이사는 카이스트 사이버보안연구센터장,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서비스 심의위원 등을 지낸 국내 최고의 사이버 보안 분야 권위자로 꼽힌다. 카이스트 공대 여성 교수 '1호'라는 상징성도 보유하고 있다.
문 이사는 2022년부터 KB국민은행의 이사회를 지키며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금융권 디지털 전환 속에서 이사회의 보안 전문성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외이사 비중 62.5%로 '꼴찌', 경영진 견제 기능 축소 우려
하지만 4대 은행 가운데 사외이사의 비중 및 절대적 숫자가 가장 적다는 점은 KB국민은행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현재 KB국민은행은 총 8명의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5명이 사외이사다. KB국민은행을 제외한 신한, 하나, 우리은행의 사외이사는 모두 6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비율로 살펴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KB국민은행의 사외이사 비중은 62.5%에 그쳐 신한·하나은행(66.7%), 우리은행(75%)과 비교해 4대 은행 가운데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사외이사 비율은 단순한 자리 채우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사회 내에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의 크기를 의미한다. 이 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이사회 내에서 외부의 감시와 견제의 시선보다 사내이사나 기타비상무이사(주로 지주사 임원) 등 회사 내부 경영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 사외이사 1인당 소위원회 5.2개로 4대 은행 최대, 심도 있는 안건 검토 한계 우려
절대적인 인원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1명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은행권 사외이사들은 통상 감사위원회, 위험관리위원회, 보수위원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등 여러 소위원회에 속해 활동해야 한다. 국민은행만 보더라도 이사회 안에 감사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평가보상위원회, 내부통제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위원후보추천위원회,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 등 7개의 소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외이사 인원이 적으면 한 명의 이사가 너무 많은 위원회를 겸임하게 되어 안건을 깊이 있게 검토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타행 사외이사들이 1인당 평균 2.6~3.5개의 소위원회를 분담하고 있는 반면, KB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1인당 평균 5.2개의 위원회를 맡고 있다.
올해 3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서태종 전 이사는 무려 6개의 소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여러 위원회를 겸직하는 사외이사(MCD, Multi-Committee Directors)가 기본적으로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감시 품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는 사외이사 한 명에게 지나친 부담(Overloading)이 지워지지 않을 때 더 효율적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공동 연구 논문인 'The Structure of Board Committees'에 따르면, MCD3개 이상의 소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다중 위원회 이사(multi-committee directors)'들에게는 잠재적 '과부하 비용(overloading costs)'이 발생할 수 있다.
태평양(Pacific-Basin)금융저널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학술논문에서도 "현실적으로 유능한 사외이사(독립이사)가 부족해 한 이사가 여러 위원회를 겸임하는 현상(중복 소속)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위원회 중복 소속은 결과적으로 기업의 전반적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해당 이사가 '바쁘지 않은(non-busy) 이사'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