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한 타인을 도운 시민이 오히려 범죄자로 의심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선의가 오해를 넘어 때로 범죄로 몰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점차 곤경에 빠진 타인을 돕기 보다 상황을 회피하는 선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변태로 오해받은 어느 입주민의 경고문' ⓒ보배드림
12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변태로 오해받은 어느 입주민의 경고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논란이 됐다. 글에는 "새벽 2시에 만취해서 밖에서 자고 있는 여성을 깨워 집 비밀번호 누르는 것까지 도와줬더니, 오히려 남자 일행들은 나를 변태 취급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해당 작성자는 글에서 "여성과 동행한 남자가 '내가 따라오길 잘했네' 이런 말 하는 걸 들으니 기분이 너무 안 좋다"며 "좋은 일 하고도 범죄자 취급 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적었다. 위 글을 본 네티즌들은 "입이 돌아가든 말든 도와줘서는 안 된다", "경찰 신고만이 답이다"라는 등 글쓴이의 억울함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작성자는 오해를 사는 데 그쳤지만, 실제 법적 분쟁에 휘말린 사례도 있었다.
2020년 대전의 한 식당 화장실에서 줄을 서고 있던 남성 B씨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여성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여성이 구토를 한 뒤 밖으로 나와 주저앉자 그를 일으켜세워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은 이 과정에서 남성이 자신의 신체를 만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남성은 이듬해 1심 재판에서 강제추행 혐의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급대원 C씨는 2014년 화성시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자살기도를 한 여성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유두자극방식을 실시했다. 이후 여성 환자는 해당 구급대원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응급상황 당시 응급구조사가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단해 시행했다면 그러한 판단은 가급적 존중될 필요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인용한 법률은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제5조의2'로, 일명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라 불린다. 위기에 처한 타인을 일정 요건 하에서 도운 사람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거나 감면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다.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 일화는 강도를 당해 쓰러진 유대인을 모두가 외면할 때 적대 관계였던 사마리아인이 조건 없이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내용에서 유래했다.
재판부가 법적 책임은 면해줬으나, 이를 지켜본 시민들의 마음속엔 '방어 기제'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선의가 범죄로 곡해되는 현실을 목격하며, 타인을 돕는 행위가 곧 나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공포는 실제 구호 현장에서 ‘방관’으로 이어진다.
2021년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지하철에서 생긴 일'이라는 글에는 서울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는데, 주변에 있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작성자는 "해당 칸에 있던 어떤 남성들도 그 여성을 부축하거나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끝내는 아주머니들과 젊은 여성분들이 도와서 플랫폼으로 (쓰러진 여성을) 들고 나갔다"고 적었다.
이 글을 네티즌들은 "생명은 귀한데, 어처구니 없는 처벌이 내려지니 억울한 범죄자가 되기 싫고 하다 보니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만졌다가는 성추행인데 누가 나설까", "도와줄 때는 성추행범 각오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내놨다.
물론 도움을 받는 쪽에서 경계심을 갖는 이유도 명확하다. 취객을 돕는 척하며 실제로 추행을 저지르고는 "도와주려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범죄도 많이 벌어진다. 이런 범죄 사례들이 쌓이면서 진짜 선의조차 의심받는 불신의 벽이 높아진 셈이다.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보다 많아지기 위해선 선의가 보복이나 처벌로 돌아오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가 보완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