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축구 용어인 '헤일메리 패스', 경기 종료 직전에 딱 한번 역전을 노리며 던지는 최후의 패스다. 성공 확률 희박한 마지막 패스인 만큼 이 영화의 설정 역시 절박하고 무모하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포스터(왼쪽),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파이널 예고편 장면 ⓒ소니픽쳐스코리아
이 영화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깨어난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 미생물의 감염으로부터 별들을 구하기 위해,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해 마지막 임무에 나선다.
선택은 그가 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는 오롯이 그의 몫이 됐다. 인류의 생존이 이제 한 사람의 손에 달렸다고 느끼는 순간, 굴러들어온 돌처럼 우주 생명체가 나타난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파이널 예고편 장면 ⓒ소니픽쳐스코리아 유튜브 채널
개봉 11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작품은 동명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원작으로 한다. 저자 앤디 위어는 영화 '마션'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전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답게 그의 작품 속 과학은 치밀하고 집요하다. 동시에 그 과학의 틈 사이로 인간적인 감정이 스며든다. T(이성적인 사람)가 열광하고 F(감성적인 사람)가 감동한다는 누리꾼의 한줄평처럼, 이 영화는 머리로 이해되면서도 결국 마음에 남는다.
영화의 연출은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가 맡았고, 마션의 각본가 드류 고다드가 참여했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제작 초기부터 함께하며 제작자로도 함께 참여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원작은 156분의 러닝타임으로 압축됐지만, 그 안에 담긴 두 존재의 감정의 밀도는 결코 납작하지 않다.
외계 생명체는 적이 아닌 내 친구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파이널 예고편 장면 ⓒ소니픽쳐스코리아 유튜브 채널
이 작품은 흔한 SF가 아니다. 외계인의 침공도 없고, 전투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계 생명체는 적이 아닌 친구다. 이 영화는 우주 한가운데서 마주한 두 존재의 따듯한 우정을 바라본다.
우주선에 홀로 남겨진 인간 그레이스와 외계 생명체 록키. 둘은 외모도, 언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차 전혀 다르다. 특히 록키는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던 이족 보행의 인간을 닮은 외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구석기 시대에 태어난 듯이 거미와 돌, 두꺼비를 뒤섞은 듯한 낯선 형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이 기묘한 생명체가 귀엽게 느껴지다니.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파이널 예고편 장면 ⓒ소니픽쳐스코리아 유튜브 채널
고래처럼 음파로 말하는 록키와 영어를 사용하는 그레이스는 '과학'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탄생한 둘만의 언어는 단순한 번역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하나의 세계다.
영화 'E.T.'에서 손끝이 맞닿는 순간이 교감의 상징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투명한 벽 너머로 주먹을 맞대는 장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피부로 닿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가 오히려 이들의 우정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특히 록키는 CG가 아닌 사람이 움직이는 퍼펫으로 제작돼 촬영됐다. 조종사들이 록키를 직접 움직이며 생동감을 더했고, 서로의 연기 호흡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됐다.
영화 '마션'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비행사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1인 생존기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과학으로 연결되는 우정을 그린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과학자 그레이스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엔지니어 록키는 서로에게 딱 맞는 동료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팀플레이라는 점에서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닮았지만, 이 영화는 전투와 모험이 아닌 협력에 중점은 둔다. 지구의 동료들이 그레이스에게 인류를 위해 희생을 요구할 때 외계 생명체 친구인 록키만이 그레이스에게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이들은 별을 구하려 하지만, 사실을 서로를 구하는 유일한 존재다.
우주비행사가 아닌 겁 많은 선생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주인공 그레이스가 학교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영화의 중심에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닌 입체적인 인간이 있다. 그레이스는 두렵고, 망설이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속 전문 우주비행사들처럼 비장한 사명감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시민인 그레이스는 학계에서 따돌림당하는 비주류 과학자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에 불과하다. 그는 우주로 강제로 끌려왔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다. 비록 끌려왔지만 그곳은 감옥이 아닌 탐구의 무대였다. 그에게 우주선은 실험 공간이자 교실이된다. 그레이스는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과학을 자신의 무기이자 버틸 수 있는 이유로 삼는다.
과학 유튜버 '궤도'는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 'LIFEPLUS'를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절대 감성에 젖지 않고 이 순간에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그 과정이 너무나도 아구가 딱딱 맞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하다"며 "그 문제 해결 과정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우리 주변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다정한 우정이 결국 세상을 구한다
'인터스텔라'가 우주 속 인간의 고독과 희생, 철학적 질문을 중심에 둔 작품이라면, 이 영화는 관계와 협력, 연결에 방점을 찍는다. 이 영화가 끝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위대한 인간의 거창한 희생이 아니다.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두 존재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용기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처럼, 이들이 가진 다정함은 뜨거운 우정이었던 셈이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하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그레이스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레이스는 과연 지구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그레이스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역전승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관계의 승리에 가깝다.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함께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