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 세제, 규제 합리화 등 ‘지원 패키지’를 포함해 석유화학 사업재편 1호를 승인하면서 산업의 구조개편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 여천NCC를 보유한 한화솔루션·DL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이 이해관계자로 얽혀 있다. 울산에서는 에쓰오일이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와 합을 맞추고 있으며 대산에서도 LG화학과 한화토탈에너지스가 구조개편을 남겨두고 있다.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 ⓒ여수시
여전한 공급과잉 업황, 크게 저하한 기업들의 수익성 등을 고려하면 석유화학 사업재편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다만 대산, 여수, 울산 등 세 지역에서 다수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변화인 만큼 빠른 진행이 가능할지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26일 석유화학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사업재편 1호 최종안 승인을 두고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나프타분해설비(NCC, 에틸렌 생산설비) 270만~370만 톤의 자율적 감축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 계획의 30%가량을 채울 1호 사업재편안 승인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재편 1호라는 점에서 의미나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자체적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더해진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전날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협회는 이번 사업재편 승인 과정에서 산업통상부를 비롯해 다양한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신속한 사업재편 승인과 더불어 대규모 정부지원 패키지를 이끌어 낸 점을 뜻깊게 평가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업재편안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대산사업장이 물적분할해 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의 합작사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설비를 통합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대산사업장의 연산 110만 톤 규모의 NCC가 가동중단한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각각 6천억 원씩, 모두 1조2천억 원을 HD현대케미칼에 출자하는 자구노력을 더한다.
이에 정부는 금융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시행하기로 했다.
먼저 신규 자금 1조 원을 지원한다. 또 신설 통합법인이 보유한 금융기관 차입금 가운데 1조 원을 영구채로 전환하고 사업재편 기간인 2028년까지 3년 동안 7조9천억 원에 이르는 협약채무 상환을 유예하면서 부담을 낮춘다.
지방세인 취득세 및 등록면허세를 최대 100% 감면하고 설비가동 중단 및 자산매각 관련 법인세도 과세이연 기간을 확대하는 등 세제혜택도 병행한다.
인허가 측면에서는 공정거래법상 특례를 마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기간을 120일에서 90일로 줄이는 등 주요 절차를 간소화한다. 원가구조 개선을 위한 전기요금 할인, 원료 무관세 등도 적용한다.
그러나 이번 HD현대케미칼 사례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석유화학 사업재편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게 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전히 세계 석유화학 시장에서 에틸렌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최근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실적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한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S&P글로벌의 이달 석유화학 전망보고서(글로벌올레핀&폴리올레핀아웃룩)에 따르면 2026~2027년 세계 에틸렌 순증설 규모는 연평균 1148만 톤이다. 같은 기간 연평균 에틸렌 수요 증가량 전망치인 684만 톤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S&P글로벌은 지금까지 발표된 것 이외에 앞으로 폐쇄, 증설 취소 및 지연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되는 설비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규모가 2028년까지 526만 톤에 그치는 탓에 석유화학 업황이 반등하거나 회복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S&P) 분석에 따르면 추가 폐쇄 등(526만 톤)을 가정하더라도 에틸렌 생산시설 가동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1.0%포인트 높아지는 데 불과하다”며 “결과적으로 각국에서 설비 폐쇄를 비롯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에틸렌 등 제품들의 공급과잉 구조는 최소 2028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한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 9개사의 2025년 합산 영업손실은 2조3648억 원, 영업손실률은 3%에 이르렀다.
2021년 합산 영업이익 9조5천억 원, 영업이익률 12%를 고점으로 불황이 닥친 2022년부터 국내 석유화학 9개사의 수익성은 급락했다. 특히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손실은 불고 손실률도 확대됐다.
이에 석유화학 사업재편 2호, 3호가 빠르게 추진돼 여전한 공급과잉 상황 속에서도 반등의 기반을 다져 놓아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정유 16개사가 모두 산업통상부에 사업구조 재편계획안 제출을 완료했다.
이번 1호를 제외하면 대산 산단에서는 LG화학과 한화토탈에너지스가 힘을 모으고 있으며 여수 산단에서는 한화솔루션-DL케미칼 합작사인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이, LG화학과 GS칼텍스가 구조개편에 참여했다. 울산 산단에서는 에쓰오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이번 1호 이외에는 최종안을 다시 제출해 정부와 논의를 지속해야 하는 데다 최종안 마련까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각 사마다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고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까닭이다.
여수 산단의 LG화학과 GS칼텍스의 사례는 GS칼텍스의 지분 50%를 보유한 미국 셰브론과의 조율도 필요하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의 협력은 먼저 여천NCC의 두 주인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져야 한다.
장미수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산업통상부가 대산 산단의 1호 계획을 승인했는데 구조개편안은 (관련 기업의) 사업·재무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나머지 업체들은 상호연관성 복잡한 이해관계 등으로 기존 일정보다 지연될 수 있고 특히 울산 산단은 샤힌 프로젝트로 생산능력이 확대될 예정이어서 조율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엄찬왕 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전날 “현재의 구조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자구노력은 물론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수”라며 “이번 승인이 향후 구조개편 확산의 중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 정책 지원에 힘써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