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뜻하는 말이다. 한때 3천 선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박스피’라고 불리던 코스피의 ‘뉴 노멀’이 어느새 4천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4천이라는 미증유의 영역을 처음 밟아봤기 때문일까, 언제라도 코스피가 4천 아래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5년 5월29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자신의 공약인 '코스피 5000 시대' 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내년에도 코스피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코스피의 상승을 이끌었던 ‘밸류업’과 ‘반도체’가 2026년에도 증시를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일 증권가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올해 코스피 등락 범위를 최하단 3500에서 최상단 5500까지 바라보고 있다. 올해 코스피 지수가 최고 4226.75, 최저 2284.72를 기록했던 것을 살피면 지수의 체급 자체가 한 단계 격상된 수준이다.
코스피 상장사의 전체 영업이익은 2025년 약 300조 원을 거쳐 2026년에는 400조 원 시대를 열 것으로 추정된다. KB증권은 2026년 코스피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이 441조 원, 키움증권은 409조 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코스피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 역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궤적을 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AI·반도체 '진짜 호황' 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익 견인
2026년 증시를 관통할 첫 번째 키워드는 'AI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은 데이터센터, AI 가속기, 클라우드 인프라 증설 등 구조적 수요가 폭발하며 AI 슈퍼사이클의 정점을 찍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거두들이 2026년 하반기 신규 팹(공장) 가동을 목표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상회하는 만큼, 반도체 업종의 이익 상향은 곧 코스피 전체 EPS 상향과 지수 레벨 재산정(리레이팅)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hortage! Shortage! Shortag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AI 투자 특히, 메모리 관련 투자는 이제 본격화된 초기 국면이라 판단한다”라며 “2026년 PC, 모바일용 메모리 수요는 2025년과 비교해 감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서버 수요가 이를 모두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족’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Shortage’는 경제 분야에서 ‘공급 부족’, 또는 ‘초과 수요’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 밸류업과 리레이팅의 조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원년 될까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정책 역시 2026년 증시의 핵심 축이다. 2025년 한국 증시가 주요국 대비 압도적 수익률을 기록한 배경에 EPS 회복이 있었다면, 2026년에는 구조적인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가 주가수익비율(PER)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상법 개정 등 밸류업 이슈가 지속된다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금융, 지주, 전통 제조 등 저평가된 고배당 섹터 전반으로 리레이팅 기조가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등과 맞물려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고질적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속도가 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WGBI는 글로벌 지수 제공업체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산출해 발표하는 선진 채권지수다. WGBI에 한국 국채가 편입된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금융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인 만큼, 외국인들의 자금이 국내 채권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WGBI 편입으로 국내 금융 시장에 약 75조 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 국내 시장에 유입되면 환율, 금리 안정화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코스피 상승에도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 고환율 '뉴노멀'과 매크로 리스크, 방어 전략도 필요
다만 장밋빛 전망 속에서도 환율 변동성과 대외 정책 리스크는 경계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고착화되는 ‘고환율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기준금리 인하와 수출 회복 등의 하락 요인이 있지만, 가계부채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리스크 등 구조적 요인 탓에 환율이 예전처럼 1200원대로 복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 위축 가능성과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은 원화 가치 상승 폭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2026년 말에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에 안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은 한국 수출과 외국인 자금 흐름을 흔들 수 있는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AI 투자 과열 논란과 가까워지는 트럼프 레임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25년 상반기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반기는 AI 투자 랠리가 증시를 지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26년의 증시를 여는 질문은 이 두 가지 요인이 어떻게 변화할지, 이 둘 외의 어떤 다른 요인이 부상할지 여부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