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시점과 맞물려 경영 보폭을 넓혔는데 올해도 전방위적 경영 행보를 이어갈지 시선이 쏠린다.
이 회장은 지난해 국내는 물론 해외 곳곳을 누비며 광범위한 경영 활동을 펼쳤고 이는 그룹 전반에서 잇따른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는 더욱 과감한 행보를 통해 ‘뉴삼성’을 구체화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을 포함한 200여 명 규모 경제사절단의 중국 방문은 이 회장에게도 적지 않은 의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은 현지에 주요 생산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 ‘동포 만찬 간담회’를 시작으로 공식일정에 들어선 이 대통령은 ‘한중 벤처 스타트업 서밋’이 열리는 7일까지 중국에 머무른다. 이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비롯한 경제사절단은 이날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 등에 참여하며 현지에서 경제협력을 모색한다.
특히 대한민국 경제사절단 소속 경영인들은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 다양한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 경쟁이 공급망을 포함한 경제 분야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는 탓이다.
이 회장에게 중국 방문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들이 중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유일한 해외 낸드플래시 거점으로 중국 시안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정부의 규제에 따라 반도체 장비를 삼성전자 등의 중국 공장에 반입하려면 연간 필요 물량을 일괄적으로 승인받아야 한다. 장비를 들일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존 규제와 비교하면 다소 완화한 것이지만 리스크가 여전한 셈이다.
이에 이 회장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 중국 공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현지 정·재계와 논의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여기에 이 회장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와 협력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삼성전자 반도체 및 하만의 전장 제품, 삼성SDI의 배터리, 삼성디스플레이의 차량용 제품 등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진행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첫 해외 일정이었던 3월 중국 출장에서도 샤오미, 비야디 등 전기차 공장·본사를 찾기도 했다.
이 회장의 올해 첫 해외 공식일정이 새해 벽두에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물론 이 회장의 올해 첫 해외 일정이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이기 때문에 온전히 자의적 행보로만 보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이 회장이 보인 일명 ‘광폭 행보’를 고려하면 올해는 해외 현장 행보가 더 이른 시점부터 이뤄지고 그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탈출한 지난해 다수의 국내외 일정을 통해 삼성전자의 돌파구를 모색했고 결과물을 이끌어 냈다. 올해는 신년 초부터 족쇄 없이 경영에 나서는 만큼 AI를 필두로 한 삼성전자 및 그룹 계열사의 사업전략을 세우고 이를 진두지휘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해 부당합병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다음 날인 2월4일 곧바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관련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국내에서 이뤄진 만남이지만 빠르게 글로벌 주요 경영인들과 미래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어 3월 말에는 첫 해외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현지 업체 이외에도 중국발전포럼에서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과 조우하고 4월 초 일본을 찾아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관계기업들과 만남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는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7월17일 전후를 기점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7월 초에는 초청받은 IT분야 거물들만이 참석하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2016년 이후 9년 만에 복귀했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뒤에는 8월까지 두 차례 미국을 더 찾아 현지 빅테크 CEO들과 회동하고 방미 경제사절단에 동행했다.
이어 10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한미일 경제대화’에 참석했고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골프 회동에 모습을 나타냈다. 11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현지에서 사업 확장을 논의했다. 12월에도 일주일 동안 미국을 방문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리사 수 AMD CEO 등을 잇따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이 국내에서도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만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행사 참석,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만남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APEC 정상회의 기간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치킨 집에서 만난 일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회장의 발걸음은 그룹 전반에 걸쳐서 속도감 있게 직접적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기가 올해 4월 중국 비야디에 전자제품 부품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납품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7월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무려 22조76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다.
12월 들어서도 삼성SDS는 오픈AI와 국내 기업 최초로 AI 서비스(챗GPT 엔터프라이즈)를 제공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삼성전자는 BMW의 차세대 전기차(뉴 iX3)에 자체 차량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720’을 공급하는 성과를 품었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독일 공조기기 업체 플랜트그룹, 독일 전장업체 ZF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각각 2조6천억 원에 인수하며 8년 만에 ‘조 단위’ 인수합병(R&D) 투자를 재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중국 방문 직전인 2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신년회를 열어 올해 사업전략을 공유하며 연초부터 ‘경영 드라이브’에 나섰다.
지난해까지 초까지 삼성전자를 둘러싼 ‘반도체 위기설’이 점차 사라지고 가파른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 회장은 주요 계열사 리더들에게 전사적 AI 전환과 반도체 기술경쟁력 확보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사절단, APEC 정상회의 등에서 직접 외연을 확장하려는 대기업 회장들의 움직임이 더 뚜렷해졌다”며 “총수가 전면에 나서면 기업의 신뢰를 높여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