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룡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이 전임자가 다져 놓은 재무 성과를 토대로 회사의 역점 사업인 미국 제철소 건설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관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완성차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대제철도 현지에서 직접 공급할 철강재 제조라는 중책을 담당하게 된다.
이보룡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 ⓒ 현대자동차그룹.
이 사장은 미국 제철소 건설이라는 대규모 투자 이외에도 급격히 낮아진 수익성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도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신용평가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조 단위’의 투자를 앞둔 현대제철이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재무 부담을 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제철은 최근 공시를 통해 미국에 연간 생산능력 270만 톤 규모의 자동차강판 특화 전기로 제철소 건설에 14억6천만 달러(약 2조1522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월25일 미국 전기로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투자구조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렸고 검토 과정을 거쳤던 구체적 지분구조를 확정한 것이다.
그룹 계열사이자 주요 수요처인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4억4천만 달러(약 6500억 원) 투자해 지분 15%씩 확보하고 포스코가 5억8천만 달러(약 8600억 원)를 넣어 지분 20%를 보유한다. 나머지 50%를 현대제철이 부담하는 구조다.
현대제철의 투자 몫이 2조 원 이상이지만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는 재무 여력이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3분기 말 연결기준으로 부채비율 71.1% 및 현금성자산 2조1천억 원을 기록했다. 미국 제철소의 상업생산 시점은 2029년 1분기로 투자가 장기간에 이뤄지는데 확보한 현금 규모나 재무 지표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제철의 재무 상태는 전임자인 서강현 전 사장의 강도 높은 구조재편에 따른 성과로 여겨진다. 이익창출력이 크게 저하한 상황에서도 재무구조를 꾸준히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제철은 현재 조선용 단조 제품 등을 생산하는 100% 자회사 현대IFC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IFC 지분 80%를 처분하면서 2천억 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앞서 현대제철은 서강현 전 사장 체제에서 포항1공장 중기사업부 매각, 인천 STS 설비(냉연라인) 매각, 포항2공장 구조개편 등을 추진했다.
이에 2023년 말과 지난해 3분기 말 현대제철의 재무지표를 견줘보면 부채비율은 9.5% 낮아졌고 총차입금과 순차입금도 각각 4195억 원, 1555억 원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대제철의 부채비율은 71.1%, 총차입금은 10조316억 원, 순차입금은 7조9081억 원으로 낮아졌다.
송동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현대제철은 대규모 투자로 재무부담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그러나 투자비 지출이 오랜 기간 이어지는 점, 우수한 재무안정성 및 재무적 여력을 견줘보면 이번 투자가 현대제철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이보룡 사장은 나아진 재무 성과를 토대로 현대제철의 역점 사업이자 현대차그룹에서도 비중이 높은 미국 투자를 순조롭게 진행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의 미국 전기로 제철소 건설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 증설과 함께 진행될 만큼 현대차그룹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HMGMA의 연간 생산능력을 현재 30만 대에서 2028년 50만 대로 늘린다. 현대제철의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철강재는 HMGMA에 주로 공급된다.
현대제철은 자체적으로도 현지 투자를 통해 50%에 이르는 철강 관세 등 대외 변수에 대응력을 높인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현대차와 기아라는 안정적 수요처도 확보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는 셈이다.
다만 수년 동안 대폭 축소된 수익성을 극복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이 사장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2021년 우호적 시장 상황에 힘입어 연결기준 영업이익 2조3천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기록을 쓰기도 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국내외 경기 둔화가 시작됐고 202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철강수요 부진, 중국의 과잉공급 압박 등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현대제철 연간 영업이익은 2022년 1조6165억 원에서 2024년 1595억 원까지 10분의 1 수준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추정치도 소폭 반등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3221억 원에 그친다.
이 사장이 지난해 3월부터 현대제철 사내이사에 합류해 경영 전반의 중요 결정에 동참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임기 초기 이 사장은 현대제철의 기존 사업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신제품 양산, 성장산업 수요 확보 등을 통한 수익성 개선 활동이다.
현대제철은 고부가가치 제품 분야에서 냉연 열처리 뒤 높은 인장강도를 구현한 MS강 등 강판 신제품 공급, 차세대 모빌리티용 제품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산업의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모듈러 주택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사장은 1965년생으로 연세대 금속공학 학사학위 및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현대제철에 인수된 현대차그룹 강관 제조 계열사 현대하이스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현대제철에서 생산기술실장, 압연생산기술실장, 연구개발본부장 등을 거쳐 2024년 말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생산본부장에 올랐다. 지난해 12월18일 그룹 인사에서 1년 만에 사장 승진과 함께 현대제철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같은 달 24일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에 공식 선임됐다.
현대차그룹은 이 사장을 현대제철 대표로 임명하면서 “30년 이상의 풍부한 철강업계 경력을 기반으로 엔지니어링 전문성은 물론 철강사업 총괄운영 경험까지 풍부한 것이 장점”이라며 “전략적 투자를 연속성 있게 추진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