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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필립 클레이라는 이름의 40대 남성이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는 열 살 때 미국에 입양되어 30년간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다가 추방되어 한국에 와 있었다. 그에게 국적이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를 입양한 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뒤 그는 친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한국어를 못해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자살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미국에는 필립 클레이처럼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이 꽤 많다. 그들은 양부모의 무지와 소홀함 때문에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다가 성인이 된 뒤에야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2000년 입양아에게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의해 2000년 이후 입양된 아이와 당시 18살 미만인 입양아는 모두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 법은 1983년 이전 출생자, 즉 이 법이 발효될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입양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에는 현재 3만5천명에 달하는 무국적 입양인이 있다. 그중 1만8천명은 한국인이다. 이들은 직업을 구하기 힘든 것은 물론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사소한 범법행위로도 추방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이것을 전적으로 '미국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 올랜도 패터슨은 노예상태를 정의하는 본질적 요소는 자유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죽음'이란 사회적으로 그 존재가 지워져 있다는 것,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노예는 주인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사회관계가 없다. 주인이 노예에게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도 섬에 갇혀서 한평생 노예로 살아온 사람들이 가끔 뉴스에 나오는데, 이들의 처지를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사회적 죽음'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노예가 노예인 것은 그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제삼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국가다. 어린 김상필(필립 클레이의 한국이름)을 입양 보내면서 한국 정부가 포기한 것은 바로 이 제삼자의 역할이다. 국가가 개입을 포기할 때 아이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그들을 맡아준 사람의 선의에 달려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입양된 지 넉달 만에 살해된 현수의 사례는 '선한 양부모'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도 해외입양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입양에 대해 많은 편견이 있는 만큼, 아이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더 쉬운 일은 친부모와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설에 수용된 아동에게는 한 명당 월 150만원이 지원된다. 그러나 비혼모에게는 양육수당으로 매월 12만원이 지급될 뿐이다. 이런 이상한 정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 입장에서는 친부모 품에서 크는 것이 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시설에 수용된 아동에게 돌아가는 돈의 절반이라도 비혼모에게 지원한다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돌보지 못하면서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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