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으로 물든 나무 사이를 달리는 마차, 말발굽 소리,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은 오랫동안 뉴욕 여행의 로망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낭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된 일터였다.
마차를 끄는 말들은 도심의 소음과 차량, 계절마다 달라지는 날씨 속에서 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말의 복지뿐 아니라 관광객과 마부의 안전까지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낭만을 상징하던 말 마차가 15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26년 10월21일 수요일 미국 뉴욕시 센트럴파크 사우스 도로에서 말이 끄는 마차가 이동하고 있다. 뉴욕의 대표적인 관광 명물로 1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관광마차는 동물복지단체들의 수십 년에 걸친 반대 끝에 퇴출을 앞두게 됐다. 뉴욕시의회는 센트럴파크 내 관광마차 운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UPI/연합뉴스
로이터와 AP통신 22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의회는 이날 관광용 말 마차 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을 찬성 40표, 반대 7표, 기권 2표로 통과시켰다.
법안에 따라 기존 영업면허는 2028년 5월31일 만료된다. 이에 따라 같은 해 6월1일부터 뉴욕시에서 관광용 말 마차 영업이 금지된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은 법안에 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족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18세 청년의 여행은 비극이 됐다
10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청에서 센트럴파크의 관광용 말 마차 운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만치법(Romanch’s Law)'이 뉴욕시의회를 통과하자, 법안의 이름이 된 사망 관광객 로만치 마하잔의 유가족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올해 6월17일 센트럴파크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인도에서 온 18세 관광객 로만치 마하잔은 가족과 함께 마차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마부가 가족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잠시 마차에서 떨어져 있던 사이, 말이 갑자기 달아났다. 마하잔은 폭주하는 마차에서 떨어졌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뉴욕에서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려던 여행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제 뉴욕의 오랜 관광산업을 바꾸는 법안에 남게 됐다. 뉴욕시의회가 이번 법안을 '로만치법(Romanch's Law)'으로 명명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오래전부터 말이 끄는 관광마차의 안전성과 동물복지 문제를 제기해 왔다.
말은 주변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나 소리에 놀라 달아날 수 있는 동물이다. 자동차 경적과 공사장 소음, 차량과 자전거, 보행자가 뒤섞인 도심은 말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여름철 달아오른 아스팔트와 겨울철 혹한, 장시간 도로 위에서 일하는 환경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마구간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다른 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는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말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거리에서 쓰러진 말들, 사고는 반복됐다
10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청에서 센트럴파크의 관광용 말 마차 운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만치법(Romanch’s Law)'이 뉴욕시의회를 통과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같은 우려를 키운 것은 반복된 사고였다. 2022년 8월10일 뉴욕 맨해튼에서는 '라이더(Ryder)'라는 이름의 마차 말이 도로 한복판에 쓰러졌다. 당시 장면이 담긴 영상은 빠르게 확산하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건강이 악화된 라이더는 은퇴했지만 그해 10월 결국 안락사됐다.
맨해튼 검찰은 2023년 11월15일 당시 마차 운전사를 동물학대 관련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라이더가 건강상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일한 정황을 제시했다.
올해 6월9일에는 또 다른 말이 센트럴파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16세 마차 말 '데니즈(Deniz)'가 관광객 2명을 태우고 이동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숨진 것이다.
마차 운전사 노조가 6월16일 공개한 코넬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예비 부검 결과에 따르면, 데니즈는 독성이 강한 일본주목(Japanese yew)을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식물의 독성 물질은 말에게 치명적인 심장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두고 노조는 공원 내 독성 식물 관리 문제를 지적했다. 반면 센트럴파크 관리단체는 운전사가 말이 식물을 먹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센트럴파크 관리단체인 센트럴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가 지난 9월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부터 2026년 8월까지 약 16개월 동안 공원에서 발생한 마차 말 관련 사고와 이상 사례는 모두 9건이었다.
올해 1월에는 놀란 말이 차량이 오가는 도로로 뛰어들어 여러 대의 자동차와 충돌했다. 5월에는 말이 다른 마차와 부딪히면서 마차가 전복되고 운전사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8월29일에도 공원 남쪽에서 대기 중이던 말이 쓰러졌다.
"말을 보호하겠다면서 우리의 생계는?" 마부들의 반발
10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청 앞에서 시위대가 센트럴파크의 관광용 말 마차 운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인 ‘로만치법(Romanch’s Law)’의 표결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모두가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마차 운전사 노동조합은 일부 사고를 이유로 산업 전체를 없애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말들이 수의사 검진과 휴식을 받고 있으며, 전면 금지보다 운전사 교육과 안전관리 강화가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뉴욕시에는 마차 말의 건강과 사육 환경에 관한 관리 규정이 존재한다. 말에게 일정한 휴식과 방목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도 있다.
마부들 입장에서는 관광상품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온 직업과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뉴욕에서 마차 운전사로 일하는 사람은 150명이 넘는다. 관련 산업에는 이민자와 소규모 사업자들도 종사하고 있다. 동물복지라는 명분에 공감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생계가 흔들릴 수 있는 사람들의 불안을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통노동조합(TWU)은 이번 법안이 영업면허와 사업 자산의 경제적 가치를 사실상 박탈한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마차에서 놓여난 말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10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청에서 센트럴파크의 관광용 말 마차 운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만치법(Romanch’s Law)'에 대한 뉴욕시의회 표결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차 운전사들이 반대 푯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차가 사라진 뒤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관광객을 태우지 않게 된 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남은 생을 보내게 될까.
이번 법안에는 마차 말들을 인도적으로 은퇴시키기 위한 조항이 포함됐다. 도축하거나 다른 지역의 마차 영업에 다시 투입할 목적으로 말들을 판매·양도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은퇴한 말들이 머물 목장과 보호시설, 장기간 필요한 사료비와 수의료비, 보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에 대한 대책도 마찬가지다. 뉴욕시는 2027년 4월1일까지 마차 운전사와 소유주, 마구간 노동자 등을 위한 산업 전환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재취업 지원, 직업훈련, 진로 상담, 교육 기회 등이 포함된다. 마차 소유주에 대한 보상과 말의 은퇴·이주 지원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다만 법안이 관련 종사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보상을 확정적으로 보장한 것은 아니다. 맘다니 시장 측은 법안에 서명하고, 노동자와 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전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