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줄어드는 가운데, 이번 전쟁을 떠받쳐 온 또 다른 한 축인 유럽마저 계속 지원할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전황이 계속 어려워지는 데다 유럽 주요국도 재정 부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황이 계속 불리해지면서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러시아와 휴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만 줄 뿐이라며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의회(스토르팅)를 방문하고 있다. ⓒ AFP통신=연합뉴스
유럽은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비 지원을 확대해 왔지만, 2027년 주요국 선거와 국가별 재정 부담으로 지원을 지속하는 데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미국보다 많이 지원한 유럽 : 2027년 700억 유로 부족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올해 4월까지 우크라이나에 2360억 유로(한화 약 351조 원)를 지원했다. 미국의 지원액 1150억 유로(약 171조 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대한민국 내년 예산안 규모 820조 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독일은 540억 유로(약 80조3천억 원)를 지원하며 주요 후원국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지원 부담이 고르게 분배된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원액은 덴마크가 4.17%, 에스토니아가 3.77%에 이르렀다. 반면 독일은 1.49%, 프랑스는 1.1%, 이탈리아는 1%, 영국은 0.86%에 그쳤다. 인구를 모두 합쳐도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한 북유럽 4개국의 지원액은 독일보다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지원 전망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가 2027년 700억 유로(약 104조 원)의 자금 부족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EU는 앞서 우크라이나에 900억 유로(약 134조 원) 규모의 대출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지만, 헝가리와 체코 슬로바키아는 참여하지 않았다.
여기에 내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주요국 선거도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프랑스의 유력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집권하면 6개월 이내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위험 분석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유럽 담당 총괄이사는 가디언과 나눈 인터뷰에서 “유럽의 정치·선거·경제적 현실이 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라만 총괄이사는 러시아가 장기간 버티면서 전장에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장에서 얻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의 지원이 약해질수록 러시아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젤렌스키 "전선 동결해야", 푸틴 "나중에"
유럽의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한 휴전을 현실적 선택지로 제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미국 폭스뉴스의 '폭스 앤드 프렌즈' 인터뷰에서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전쟁을 동결하는 평화협정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지금은 전선을 동결해야 한다. 이것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휴전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안전보장을 요청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가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영토 양보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러시아도 협상 재개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현실적 가능성은 낮아 보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스티브 윗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와 회담한 뒤 11월10일 이후 미국·우크라이나와 3자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이 전했다.
이는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영토 할양,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가입 등 기존 요구에서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전선 동결, 즉 휴전은 우크라이나 쪽에 전열을 정비할 시간만 주는 것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