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위가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55만 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파리와 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군 병력까지 투입하고 있다.
시위가 격화하는 과정에서 명품점 약탈도 잇따랐다. 값비싼 물건을 노린 약탈인 것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사회적 분노'의 표출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시위대가 2026년 10월17일(현지시각) 프랑스 리옹의 한 명품관을 약탈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 시위로 피해를 본 상점은 3천 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명품 매장의 파괴와 약탈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외 언론은 시위대가 에르메스와 셀린느, 루이비통, 생로랑 등의 매장으로 몰려들어 출입문을 부수고 침입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도했다.
시위 중 명품점 약탈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다. 명품을 약탈해 온라인에 되팔아 돈을 버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유난히 명품점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는 데는 보다 깊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명품 브랜드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키워 온 브랜드 영향력이 되레 부메랑으로 돌아온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금까지 명품 업계는 소셜미디어와 문화적 영향력을 활용해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유명인을 브랜드 홍보대사로 기용하고, 패션쇼를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키며, 레드카펫을 마케팅 무대로 활용했다. 그 결과 구매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루이비통, 샤넬, 버버리, 디올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이번 시위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주최하는 '저르네 파르티퀼리에(Journées Particulières·특별 공개 행사)' 기간과 겹치기도 한다. 이 행사는 그룹 산하 브랜드들이 평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아틀리에와 작업장을 개방해 제품 제작 과정을 선보이는 자리다. 대중을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세계로 초대해 장인정신과 전통을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들은 동경과 세련된 취향의 정점을 자처하면서도 가격을 대다수 소비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강렬한 소유욕을 자극하면서도 정작 그 욕망을 충족할 기회는 극소수에게만 허락했다. 그간 쌓여왔던 소시민들의 박탈감이 매장의 진열창을 부수고, 광고판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리는 물리적 행동으로 분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테면 양극화의 표적으로 등장한 셈이다.
세르주 카레이라 프랑스 오트 쿠튀르 패션 연합 브랜드 디렉터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러한 파괴 행위가 단순히 물건을 망가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소속감을 약속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는 언제나 명품과 애증의 관계를 맺어왔다"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도덕성을 의심하고, 명품에 내재한 불평등을 비판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명품 업체들은 사태 수습과 향후 대응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디올과 셀린느, 에르메스는 뉴욕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거나 매장 피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일부 업체는 매장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내부 메모에 따르면 앙투안 아르노 LVMH 커뮤니케이션·지속가능성 부문 책임자는 지난 19일 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모든 구성원의 안전과 사업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LVMH는 약탈을 막기 위해 사설 경비업체도 고용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