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5·18 민주화운동 영상을 상영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인천시가 앞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섭외 단계부터 사전 관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인천시의원이 '역사왜곡'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음악축제의 주최 기관이 정치적 표현을 '재발 방지'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예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사실상의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매시브 어택(왼쪽), 7월31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6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이 더 발룬티어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매시브 어택 인스타그램/연합뉴스
21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내년부터 해외밴드 섭외시 정치색 검열하겠다는 펜타포트'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며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앞서 인천시는 15일 '2026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 성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축제 중 일부 해외 밴드의 정치적 영상 표출 이슈와 관련해 시는 향후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한 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시는 향후 아티스트 섭외단계부터 사전에 유의사항을 고지하고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논란의 시작은 8월1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었다. 이날 대표 출연자로 무대에 오른 매시브 어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재해석해 공연을 펼쳤다. 전광판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민주화 항쟁 영상과 함께 "K-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는 메시지가 등장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작전을 비판하는 영상도 선보였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한국 정부의 민간인 학살을 지원했다는 취지의 자막이 송출되면서 일각에서 '역사적 사실 왜곡'을 주장하고 나섰다.
매시브 어택은 원래 정치·사회적 메시지로 잘 알려진 그룹이다. 1988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결성된 이들은 힙합과 덥, 소울, 전자음악, 록을 결합해 '트립합(Trip-hop)'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91년 발표한 데뷔 앨범 '블루 라인스(Blue Lines)'를 비롯해 앨범 '메자닌(Mezzanine)', 대표곡 '티어드롭(Teardrop)', '언피니시드 심퍼시(Unfinished Sympathy)'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들의 공연에서 전쟁과 국가권력, 인권 침해, 기후 위기, 난민 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매시브 어택은 오랫동안 음악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제기했고, 무대의 영상과 자막을 음악만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더욱 이번 사건이 상징적인 것은 이들이 선택한 곡이 '시대유감'이었다는 사실이다. 1995년 발표 당시 '시대유감'은 음반 사전 심의 과정에서 가사 수정 요구를 받았고, 서태지는 가사를 삭제한 연주곡 형태로 발표하며 저항했다. 이후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가 폐지되면서 가사가 담긴 곡이 공개됐다.
사전 검열에 저항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곡을 30년 뒤 해외 음악가가 다시 부른 것이다. 그런데 그 공연이 다시 정치적 표현의 사전 관리 논란을 불러온 상황은 역설적이다.
공연 이후 국민의힘 소속 인천 지역 정치인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범석 인천시의원이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2026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 후속 조치 관련 보고' 자료. ⓒ이범석 인스타그램
국민의힘 이범석 인천시의원은 매시브 어택의 공연에서 제기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민간인 학살 지원이라는 역사 왜곡을 문제 삼으며, 행정사무감사에서 해당 자막의 사실관계와 공연 경위를 따져보겠다고 예고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은 8월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일방적인 사실처럼 전달한 것으로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연 이후에는 '사상 주입 쇼 같다', '최악의 정치 선동 쇼였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보며 송도가 자랑하는 락페스티벌인 펜타포트가 정치적 선동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며 "펜타포트는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락페스티벌이지, 둘로 나누는 정치의 무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논란은 인천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박찬대 인천시장은 9월9일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해당 자막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이후 인천시는 지난 15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섭외 단계부터 유의사항을 고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매시브 어택은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적 표현 때문에 국가권력의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올해 7월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공연에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와 그랜트 마셜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쳤고, 공연 중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 해방)' 구호가 등장했다.
싱가포르 경찰과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은 7월31일 공동성명을 통해 두 멤버에게 경고를 내리고 재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향후 매시브 어택의 싱가포르 공연 허가도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당국은 외국 국기 표출 및 정치적 대의에 대한 지지가 싱가포르 법과 공연 허가 조건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인종·종교 간 화합과 사회적 안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이에 매시브 어택은 지난 8월2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연 이후 경찰에 억류돼 조사를 받은 데 대해 놀라움과 실망을 표하며 "이번 경험은 보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줬다"고 밝혔다.
인천시의 후속 대응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비판적인 반응도 나타났다. 누리꾼들은 "록의 기본 정신이 자유와 저항인데 프리 팔레스타인과 5·18 이야기를 했다고 검열하겠다는 것이냐", "대중문화를 왜 정치나 법으로 검열하려 하느냐", "록에 무슨 검열이냐. 좀 가만히 있어라", "평가는 자유지만 검열은 자유가 아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매시브 어택의 공연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응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공연자의 메시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과 대중문화계의 비평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