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 명품 브랜드 디올이 영화 제작사와 손을 잡았다. 명품 업계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디올뿐 아니라 여러 명품 브랜드가 직접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과 영화 제작사 A24가 2년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디올 및 A24 인스타그램 캡 이미지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이 미국의 영화 제작사 A24와 2년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디올이 그간 해오던 의류 제작 영역에서 영화·연극 등 문화 콘텐츠 영역으로 사업 반경을 넓힌 것이다.
영화 주인공에게 패션 브랜드의 옷을 입히는 기존의 간접광고나 의상 협찬 방식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번엔 패션 브랜드가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한다.
프랑스의 또 다른 패션 브랜드 생 로랑은 2023년 영화 제작사 '생 로랑 프로덕션'을 창립해 자사의 이름을 걸고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는 패션 브랜드가 영화 제작사를 설립한 최초의 사례다. 그들이 제작한 2024년 개봉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코미디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제작해 202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생 로랑 프로덕션이 제작에 참여한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왼쪽). 코미디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생로랑 프로덕션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프라다도 2025년부터 독립영화 기금인 '프라다 재단 영화 기금'을 창설해 매년 150만 유로(약 24억 원)를 독립영화 제작에 투입하고 있다. 프라다의 자사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도 2023년 '여성 서사 위원회(Women's Tale Committee)'를 만들어 여성 감독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지금껏 30편이 넘는 영화 제작을 의뢰해왔다. 미우미우 옷을 입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독립영화를 지원함으로써 미우미우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 브랜드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구찌는 패션쇼를 영화로 대체하기도 했고,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샤넬은 여러 영화제와 후원 관계를 맺어왔다. 이처럼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실제 극장 개봉과 여러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명품 업계의 영화 제작 이유로 업계 성장 둔화가 먼저 꼽힌다. 명품 회사가 가격을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컴퍼니는 산업 보고서를 통해 2019년부터 2024년의 명품 산업 성장의 80%가 가격 인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5년부터 가격 인상이 명품을 구매하고 싶은 상위 중산층의 수요를 감소시켰고 이로 인해 업계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기존 마케팅 수단의 한계도 한몫을 한다. 매 시즌마다 빠르게 휘발되는 광고나 패션쇼와 달리 영화 제작은 브랜드 이미지를 오래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생로랑의 수석 디자이너 앤서니 바카렐로는 2025년 10월23일 미국의 패션 잡지 보그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패션쇼와 광고 캠페인은 금방 사라지지만, 우리가 만든 영화는 30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을 통해 젊은 소비자와 접점을 늘릴 수도 있다. 최근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지닌 스토리와 세계관을 향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영화는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여기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직접 관람하려는 풍조가 더해져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기존의 광고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