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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는 지중해의 검푸른 파도가 잔잔하게 너울거린다.

[호텔리어 조정욱의 컨시어지 노트] 할아버지 아버지 손주 3대가 모두 호텔을 누리기 위한 핵심 조건 뭘까?
3대가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호텔은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AI 이미지. 

마음은 너무나 벅차다. 여기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품은 문명의 바다이자 내륙의 바다다.

나는 매년 3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라스 파야스(Las Fallas)' 축제를 보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다."

혼자 몰고 온 차를 주차해둔 곳 옆에서는 라면을 끓일 냄비 속 물이 끓고 있었다.

오래전 삼성 지역전문가로 스페인에 머물 당시, 말 그대로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 발렌시아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처음 마주한 지중해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찬란한 풍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 순간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여행을 하지 않게 됐다.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 불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조금씩 들뜨기 시작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여행을 떠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다. 그래서 호텔 업계 역시 5월부터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든다.

요즘 호텔에서 자주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는 3대가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이다. 아직 정정한 할머니나 할아버지 한 분, 부부, 그리고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한두 명으로 구성된 가족들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호텔 로비에서도 그들의 표정은 대체로 행복해 보인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광장시장을 둘러보고, 청계천을 산책하고, 한국 쇼핑을 즐기며, 케이팝을 듣는 특별한 여행을 함께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늘 눈에 들어오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어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바라보거나,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따로 떨어져 있는 아이들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오래전 내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해외 패키지 가족여행을 갔을 때 하루 종일 딴짓만 하던 중학생 아들의 모습이다. 유적지에서는 유적을 보지 않았고, 박물관에서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 손에는 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그 시절의 '언터처블' 중학생 아들이 지금 호텔 로비 어딘가에 다시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겉으로는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어쩌면 각자 조금씩은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모두가 조화로운 가족여행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여행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존중할 수 있다면, 3대가 함께하는 여행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인류가 동굴에서 살던 시절에도 아버지는 사냥을 나가고, 어머니는 열매를 따러 가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가 다시 동굴로 돌아와 서로의 하루를 나눴다. 짧지만 강렬했던 각자의 경험을 함께 공유했을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꼭 붙어 있어야만 좋은 여행은 아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각자의 공간을 배려한 뒤 다시 함께 모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풍성한 추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호텔은 가족여행에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호텔은 원래부터 시간과 공간이 효율적으로 분리되고 설계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커넥팅 룸'이다. 평소에는 각각 독립된 객실로 사용하다가, 대가족이 함께 머물 경우 중간 문을 열어 하나의 스위트룸처럼 연결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가족끼리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좋은 호텔에는 최상층이나 전망 좋은 곳에 ‘이그제큐티브 라운지’가 마련돼 있다. 일반 객실보다 다소 비용이 들긴 하지만, 조식은 물론 라이트 스낵과 해피아워까지 제공돼 사실상 하루 식사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객실을 이용하면 아이들은 객실에서 TV를 보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부모는 라운지에서 음료나 와인을 곁들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서로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 덕분에 오히려 함께하는 시간이 더 편안해지는 셈이다.

최근 리조트형 호텔들은 키즈클럽이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바닷가 리조트나 마운틴 리조트의 경우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고, 부모는 부모대로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결국 가족 모두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함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호텔 직원 면접 자리에서 나는 지원자들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호텔업을 선택했나요?"

그러면 많은 지원자들이 비슷한 대답을 한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에서 경험한 호텔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서비스가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안도하게 된다.

호텔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여행의 행복과 추억을 완성하는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텔을 이용할 때 기억해둘 만한 작은 팁!

호텔 직원과 친해지면 의외로 유용한 순간이 많다. 삼성전자 직원을 안다고 해서 휴대폰을 싸게 살 수는 없지만, 호텔 직원을 알고 있으면 객실이나 식음업장 이용과 관련해 생각보다 다양한 도움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무료 서비스나 할인 혜택이 생기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지인 찬스’다.

물론 3대 가족여행이나 대가족 여행에서 모두가 100%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호텔이라는 공간을 잘 활용하고,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할 수 있다면 여행은 훨씬 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

혹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호텔 로비의 컨시어지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친절하고, 또 여행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족여행의 달이기도 하다.

글쓴이 조정욱은 앰배서더서울풀만 대표이사다. 25년차 호텔리어로, 삼성생명에서 해외 투자 기획 업무를 거쳐 신라호텔에서 서울·제주 총지배인과 호텔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22년, 한국 최초의 민영 호텔 '금수장'에 뿌리를 둔 앰배서더서울풀만의 전관 리모델링 재개관과 함께 대표이사로 취임해 중식당 '호빈'의 미쉐린 가이드 2년 연속 수록 등 주목할 성과를 이끌어냈다.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호텔에서 일해온 사람의 시선으로, 호텔을 조금 더 잘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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