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 포화와 규제 리스크 확대가 맞물리면서 해외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쿠팡의 글로벌 확장 전략은 익숙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성공을 이끈 ‘공식’을 그대로 해외에 이식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는 물류 투자와 규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대관 역량으로 요약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경영 책임을 제도보다 ‘사람’으로 방어하는 방식, 이른바 ‘인간 방패 경영’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이사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물류·AI 투자 확대, “한국 플레이북”의 복제
16일 쿠팡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물류·AI(인공지능)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템포, 국내 로봇 기업 씨메스, 물류 자동화 기업 콘토로로보틱스 등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이다.
쿠팡은 AI 기반 수요 예측과 로봇 자동화를 결합해 물류 전반을 통합 운영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콘토로로보틱스와 같은 피지컬 AI 기술이 접목될 경우, 단순 유통을 넘어 물류 인프라를 직접 설계·운영하는 단계로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투자 확대는 ‘빠른 배송’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을 글로벌에서도 구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쿠팡은 한국에서도 적자를 감수한 대규모 물류 투자로 ‘로켓배송’ 기반을 선제적으로 구축했고, 이는 시장 지배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마포 글로벌 이코노미 행사’에서 "초기 한국 시장에서는 페덱스 같은 물류업체도 없고, 배송 차량도 없어 라스트마일 물류 시스템을 직접 구축해야만 했다"면서 "그러나 그렇게 시스템을 구축해 둔 덕분에 훗날 로켓배송이나 새벽배송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쿠팡은 2023년부터 글로벌 AI 스타트업에 모두 8400만 달러(약 1239억 원)가량을 투자했고, 글로벌 사업 재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지난해 모회사인 쿠팡Inc에 1조4천억 원 규모의 중간배당도 실시했다. 이와 함께 대만에서는 풀필먼트 센터를 추가 건립하는 등 해외 물류 거점 확대도 병행하고 있다.
이처럼 물류 인프라와 기술 투자를 동시에 확대하는 전략은 한국에서 검증된 성장 공식을 글로벌 시장에 적용하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동일한 경쟁 우위를 해외에서도 구현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김앤장 출신으로 구축했던 '인간 방패', 미국에도 수출된다
쿠팡은 글로벌 확장 과정에서 물류 투자뿐 아니라 ‘대관 네트워크’ 구축도 병행하고 있다. 제도 기반 대응보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영향력 확보를 우선하는 전략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쿠팡Inc.는 최근 미국에서 로비 회사 2곳을 추가 선임하며 워싱턴 DC 내 정책 대응 역량을 강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밀러 스트래티지스’ 등 기존 자문 네트워크에 더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로비스트 명단에는 마이크 존슨과 척 슈머, 존 코닌 등 유력 정치인들과 연결된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 목적 역시 무역·투자 확대와 동맹국 간 경제 협력 등으로 명시돼 있다. 미국에서 로비 활동은 합법적 영역이지만, 이러한 행보는 쿠팡이 해외에서도 규제 대응을 위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쿠팡은 2021년부터 미국 대관 활동에 꾸준히 자금을 투입해왔다. 미국 연방 상원의 로비 공개법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8월부터 올해까지 로비 활동에 1075만 달러(약 159억2천만 원)를 지출했다.
로비 대상 역시 연방 상·하원 등 입법기관뿐 아니라 상무부, 국무부, 농무부, 재무부, 무역대표부(USTR),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행정부 전반에 걸쳐 있다. 특정 이슈 대응을 넘어 정책 전반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정치 일정과 맞물려 대관활동을 확대하는 양상도 확인된다. 연도별로 보면 로비금액은 2021년 101만 달러, 2022년 181만 달러, 2023년 155만 달러 수준을 유지하다가 미국 대선이 있던 2024년에는 330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일수록 이사회 독립성, 이해충돌 방지, 책임 경영 체계 등 ‘제도 기반 거버넌스’를 통해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볼 때, 인적 네트워크 중심의 대응 구조는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책임 귀속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구조는 국내에서 이미 구축해 온 대응 방식의 연장선으로도 읽힌다. 쿠팡은 전관 법조인과 관료 출신 인사를 대거 영입해 법무와 대관 기능을 결합하고, 제도적 절차보다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리스크를 관리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인사 전략은 이사회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쿠팡과 자문 관계에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 인사들이 이사회에 대거 포함되면서 독립성과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일부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은 해당 로펌 고문을 겸직하고 있어,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이들이 로펌에서 수행하는 자문 분야가 쿠팡의 핵심 사업과 규제 이슈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재붕·김원준 이사는 해당 로펌에서 각각 물류와 공정거래 분야 자문을 맡는 동시에 쿠팡의 감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류정책과 공정거래 이슈 등 주요 규제 리스크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온 쿠팡의 환경을 고려하면, 이해관계를 가진 인사가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 자체가 충돌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대관 대응 측면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지만, 이사회 본연의 독립적 감시·견제 기능과는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기업 지배구조에 특화된 한 컨설팅사의 연구원은 “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법무법인의 인사가 사외이사이자 감사위원으로, 그것도 2명이나 선임된 것은 독립성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특히 해당 인사가 로펌에서 담당하는 자문 분야가 회사의 핵심 사업이나 규제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을 경우 이해충돌 가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더 나아가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대응 구조는 단순한 독립성 문제를 넘어 보다 본질적인 ‘책임 귀속’ 문제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적 분쟁이나 규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제도와 절차에 따른 책임 구분보다 인맥을 통한 대응이 우선될 경우, 의사결정의 책임 주체가 흐려지고 사후적 책임 추궁 역시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실제 리스크 대응 과정에서도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쿠팡 퇴직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기소 외압 의혹이 제기되며, 기업과 수사기관, 외부 네트워크 간 연결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결국 이러한 구조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 주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의사결정 과정 역시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책임성과 투명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우영 한국ESG연구소 거버넌스본부장은 경제개혁연대가 마련한 K자본시장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좋은 지배구조를 판단하는 기준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회수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지 여부”라며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경영진에 대한 책임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인지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