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그룹이 실질적 경영 권한을 도세호 삼립 각자대표이사에게 맡기며 내부 쇄신에 나서고 있다. 도 대표가 승계 국면에서 조직 안정화를 뒷받침하는 소방수로 투입된 셈이다.
도 대표는 그룹 전반의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실제로 총수 일가를 대신해 주요 현안 대응에 나서온 점도 이러한 역할과 맞닿아 있다.
최근 도 대표가 삼립 대표이사를 맡게 된 배경 역시 이러한 경영 안정화 역할의 필요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두 아들이 나란히 승진하며 승계 작업에 속도가 나고 있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보탠다.
도세호 삼립 대표이사가 올해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삼립의 사내이사이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에 따라 도 대표는 비알코리아와 파리크라상, 상미당홀딩스에 이어 삼립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연합뉴스
30일 SPC그룹에 따르면 도 대표는 비알코리아와 파리크라상, 상미당홀딩스에 이어 최근 삼립까지 맡으며 주요 계열사의 경영을 폭넓게 총괄하게 됐다. 각 계열사에서 사내이사이자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만큼, 주요 의사결정 전반에 관여하는 구조다.
비알코리아는 오너 일가가 66.7%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차남이 맡고 있으며, 파리크라상은 삼립의 최대주주로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해온 계열사로 장남이 이끌고 있다 지난 1월 공시에 따르면 피씨홀딩스로 사명이 변경되면서 지주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모이기도 했다. 상미당홀딩스는 올해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파리크라상에서 인적분할돼 설립된 지주사다. 삼립은 SPC그룹의 모태이자 상장 계열사로 그룹의 주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면 도 대표는 그룹 전반의 운영을 조율하는 키맨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분관계가 없는 도 대표가 핵심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총수 일가와 주요 계열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도 대표는 그동안 SPC그룹의 주요 리스크를 전면에 나서 직접 수습해 왔다. 그는 지난해 5월 경기도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202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표 증인으로 출석하며 그룹의 도의적 책임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할을 감안할 때 도 대표의 주요 과제는 승계 국면에서 경영 환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 대표 역시 취임사에서 “안전 최우선 경영으로 고객의 신뢰를 높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SPC그룹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몇 년 동안 근로자 사망사고와 화재사고가 이어지면서 안전 관리 체계 점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22년 평택, 2023년 성남, 2025년 시화공장 등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올해 2월에는 시화 공장에서 화재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반복된 사고는 개별 사안을 넘어 그룹 전반의 내부 통제와 안전 관리 체계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승계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리스크는 지배구조 안정성과도 맞물려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가운데 허 회장의 두 아들이 회사에서 경영의 보폭을 넓히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남 허진수 파리크라상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출범한 SPC변화혁신추진단의 의장직을 맡은 데 이어 지난해 11월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차남 허희수 비알코리아 사장은 지난해 11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 아들의 행보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 성과와 역할 확대를 통해 승계 기반을 다져가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의 평가를 고려할 때 일정 수준의 경영 성과가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진수 부회장과 허희수 사장은 SPC삼립에서 각각 16.3%, 11.9%의 지분을 보유하며 개인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파리크라상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허영인 회장이 63.3%로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허진수 부회장과 허희수 사장은 각각 20.3%, 12.8%를 들고 있다.
SPC그룹이 설비 투자를 통해 내부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본격화한 시점은 2024년 말로 알려져 있다. 그 해 11월 SPC삼립은 2026년까지 1천30억 원을 투자해 청주공장 시설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이 공장을 방문 점검한 뒤 SPC그룹은 안전에 방점을 두고 시설투자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투자대상은 청주공장을 비롯한 5개 공장으로 확대됐고, 투자 기대효과에는 노후화 설비 교체와 자동화 라인 증축 등 안전을 강화하고 생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시기 허진수 사장이 의장을 맡고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변화 혁신 추진단’이 만들어지고, ‘안전 스마트 공장’ 건립 권고안이 채택되기도 했다. 이 권고안에 따라 지난해 12월에는 3천억 원을 투자해 충북 음성에 안전 스마트 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다만 SPC그룹이 투자를 확대하며 자산을 늘리고 있음에도 기존 자산의 가치가 줄어드는 속도는 더 빠른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투자한 효과보다 기존 자산의 노후화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토지·건물·설비의 투자금액을 표시하는 취득원가는 같은 기간 1조2475억 원으로 497억 원 증가했지만 기존 설비의 감가상각 누계액은 6791억 원으로 720억 원 늘어나며 더 큰 증가폭을 보였다. 이에 따라 유형자산 장부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5400억 원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277억 원 감소했다.
이러한 흐름만으로 설비 노후화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부 자산의 교체 속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특히 안전 투자 확대를 선언한 이후에도 자산 구조 변화가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